▲▲ 양반탈을 들고 웃고 있는 한우성 가산오광대 보유자. 양반탈과 그의 얼굴이 닮은 듯 보였다.
뉴스사천
한우성 선생이 사무실 벽에 걸린 중요무형문화재보유자인정서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처음 무형문화재보유자로 인정받은 한계홍, 한윤영 선생의 인정서 밑에 적힌 '문화공보부 장관'이라는 명칭에서도 세월의 흐름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손주까지 치면 5대째 가산오광대에 몸 담고 있는 셈이라며 한 선생이 말했다.
"가산오광대는 조창오광대라고도 하는데, 옛날에 축동 가산마을이 인근 7개 군에서 세곡을 받아서 중앙에 바치는 조창(漕倉)이 있던 곳이야. 그때 조창이 있고 사람이 많이 모이니까 오광대가 생겼지. 그래서 1950년 말 쯤 중단이 된 걸 71년에 동아대학교 강용권 교수가 복원했어. 그때부터 인자 내가 옆에서 심부름도 하면서 시작한 게 50년 가까이 됐지."
'피는 못 속인다'는 한 선생은 가산오광대의 주축이 한 씨 집안이라고 설명했다. 김나율 사무국장도 그 당시 가산마을이 한 씨 집성촌이었다며 덧붙였다. 300여 년 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문화를 자손들이 배우고,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는 것.
그렇다면 가산오광대 활동을 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올해로 16년째 가산오광대 활동을 해오고 있는 김나율 사무국장이 설명을 이었다.
"25명에서 30명은 항상 꾸준히 활동을 하시고 있죠. 인간문화재 한우성 선생님이 계시고 그 밑에 전수교육조교, 이수자, 전수자 순으로 피라미드처럼 내려와요. 토요일마다 전수교육을 받는데 한 선생님하고, 전수교육조교 선생님들은 연세가 있으시니까 지도만 해주시고, 무대에서 주축으로 뛰는 사람들은 이수자, 전수자들이에요."
가산오광대 이야기를 풀어내는 한우성 선생에게서는 한 분야의 장인이 가진 자부심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특히 사장될 뻔했던 '상사디야' 춤을 재연해 전하고 있는 것도 그의 자부심 중 하나다.
"상사디야라고, 가산오광대 뒷풀이 춤이 있는데 선친들이 하던 놀이야.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어릴 적에 직접 상사디야 놀이를 하셨던 분의 구술을 듣고 춤을 재연했지. 지금도 축동초등학교 학생들이 공개행사 때 이 춤을 재연해."
사회풍자적인 성격을 지닌 가산오광대 전문가 아니랄까봐, 두 사람은 가산오광대를 하면서 느꼈던 어려움에 대해서도 진솔하게 털어놨다. 김 국장은 전문가의 부재와, 인력 부족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제일 큰 어려움은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거예요. 어떤 한 가지를 던져주면 제대로 표현해 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야 관객들에게도 더 다가갈 수 있고 호응도 커요. 아무래도 아마추어가 해내기에는 힘든 부분이죠. 프로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고요. 인력도 부족해서 가산오광대 공연 기획부터 사무실 청소까지 저 혼자 모든 업무를 소화하고 있어요."
두 사람에게 한국의 탈춤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신청 대상이 된 것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유네스코에 한국 탈춤이 등재되면 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저희 스스로 자부심도 생기겠죠. 그래도 현실적으로 크게 달라지는 부분은 많지 않을 거예요."
한 선생도 지자체 및 지역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각 지자체에서 도와줘야 돼요. 위에서. 가산오광대뿐만 아니라 많은 전통예술문화단체가 있는데, 시에서 골고루 도와줘야 됩니다. 안동은 안동시하고 경상북도에서 그 단체를 도와주니까 1년 내내 단체에서 상설 공연을 해요. 그렇게 되면 지역 문화예술도 다 살아나는 거 아니겠습니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