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의 차를 구하시오"는 수학 전문말일까요? 초등학생이 보는 수학 교과서에도 이런 말을 굳이 써야 할까요? "-의 차를 구하시오"는 전문말이 아닌 일본말이지 않을까요?
최종규/숲노래
어린이는 '구구단'이란 이름부터 낯섭니다. 아니, '덧셈·빨셈'도 낯섭니다. '더하다·빼다'는 어린이도 알고 삶으로 누리지만, 여기에 '-셈'이란 이름을 붙이면 어쩐지 하나도 모르는 자리라고 여기고 말아요. 그런데 '플러스·마이너스'라고 대뜸 말하면서 이 영어만 전문말로 여긴다면, '더하기(더하다)·빼기(빼다)'는 어떤 말이 되어야 할까요.
잉여(剩餘) : 1. 쓰고 난 후 남은 것. '나머지'로 순화 ≒ 여잉(餘剩) 2. [수학] '나머지'의 전 용어
플러스 : 1. 이익이나 도움 따위를 이르는 말 2. [물리] 두 개의 전극 사이에 전류가 흐를 때에, 전위가 높은 쪽의 극 = 양극 3. [수학] 덧셈을 함 = 더하기 4. [수학] 덧셈의 부호 '+'를 이르는 말 = 덧셈 부호 5. [수학] 어떤 수가 0보다 큰 일 = 양 6. [수학] 양수임을 나타내는 부호 '+'를 이르는 말 = 양호 7. [의학] 질병 따위의 검사에서, 양성임을 이르는 말
더하기 : [수학] 덧셈을 함 ≒ 보태기·플러스
(표준국어대사전)
살림 전문가 사이에서 쓰는 살림 전문말은 누가 못 알아들을 만할까요? 어쩌면 살림 전문가 사이에서 쓰는 살림 전문말은 '살림 전문가를 비롯해서 살림 전문가 아닌 사람도 알아들을' 수 있고, 어린이도 쉽게 알아들으며 받아들일 뿐 아니라, 새롭게 가꿀 수 있는 말이지 않을까요?
밥을 하는 일인 '밥하다·밥'은 밥을 짓는 자리에서 전문말이 될 만할까요? 아니면 한자말 '요리'만 전문말이어야 할까요? 사전풀이를 살피면 '밥하다'는 매우 짧게 다루고 '요리'는 길게 다룹니다.
밥하다 : 밥을 짓다
요리(料理) : 1. 여러 조리 과정을 거쳐 음식을 만듦. 또는 그 음식. 주로 가열한 것을 이른다 2. 어떤 대상을 능숙하게 처리함을 속되게 이르는 말
(표준국어대사전)
대학교에서 수학이나 과학이나 철학이나 문학을 배우면서 깊거나 넓은 길을 파고든다고 해서 그 갈래에 있는 사람만 '전문가'이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말은 말에서 끝나지 않아요. 모든 말은 삶에서 태어나고 삶에서 자라며 삶으로 가꾸고 삶으로 나눕니다. 논문으로만 쓰고, 학회지에만 선보이고, 방정식 풀이에만 애쓴다면, 이러한 수학말은 굳이 가다듬거나 손질하거나 새롭게 지을 까닭이 없을 만합니다. 이때에는 그저 '끼리말(끼리끼리 쓰는 말)'에 머물거든요.
그런데 알아두어야 합니다. 끼리말이라고 해서 나쁘지 않습니다. 그저 끼리끼리로 갇힌 채 오랫동안 맴도느라, 끼리말을 배우면서 학문을 가다듬으려고 하는 분들은 그 끼리말이 아니고서는 그 학문을 할 수 없네 하고 느끼기 쉬울 뿐이에요.
그리고 그곳 바깥에 있는 이들은 먼저 끼리말 때문에 걸려넘어져서 그곳으로 들어오기 어렵고, 이러면서 그 학문자리는 끼리말이 더욱 단단해질 뿐 아니라, 그렇게 단단해진 끼리말이야말로 '좋은 전문말'로 여기면서 굳어지곤 합니다. 새로운 싹이 틀 틈이 없는 셈입니다.
학문이 깊이하고 너비를 두루 품자면, 삶이라는 자리로 들어서야지 싶습니다. 우리 삶자리에서 수학이나 과학이나 철학이나 문학이지 않은 세간은 한 가지조차 없습니다. 모든 곳에는 모든 학문이나 전문성이 골고루 깃듭니다. 책 한 자락을 찍고 엮는 인쇄소나 제본소나 출판사에도 수학이 있습니다.
관리하고 회계에도 수학이 있지만, 옷을 마름하고 바느질하고 뜨개질하는 데에도 수학이 있습니다. 논밭을 일구는 연장인 쟁기나 가래나 호미에도 수학이 있습니다. 쟁기날이나 삽날이나 호미날에 수학이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요? 별자리에는 수학이 없을까요? 또, 별자리에 문학이나 철학이나 과학이 없을까요?
벼꽃에도 과학이며 철학이 흐르고, 벼알인 나락을 훑어서 햇볕하고 바람에 말린 뒤에 절구질로 빻아서 키로 까부르고 조리로 골라서 물을 맞추어 솥에 앉혀 밥을 짓는 이 흐름에도 과학이며 수학이며 철학이며 문학이 고스란히 흐릅니다. 그저 이를 수학 방정식이나 과학 실험이나 문학 작품이나 철학 이념으로 풀어낸 전문가란 어른이 매우 드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