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요즘은 결혼식에선 국수를 만나기 어렵다. 그러나 마을의 대동회와 같은 대소사에서는 소머리국밥 아니면 주로 국수를 많이 먹는다.
정덕수
아버님께서 국수를 좋아하신 건 아마도 어려서 잔치나 상을 당한 집이 있어야 먹을 수 있었던 까닭은 아닐까 싶다. 그런 국수를 상당히 오랫동안 입에 안 댄 이유가 있다. 그러하신 아버님과 난 이 부분에선 반대되는 입장인 이유가 있다.
9살 되던 해 여름내 국수로 연명해야 됐다. 지금처럼 학교를 옮기는 일이 쉽지 않던 그 시절 양양읍 서문리에서 두 달에 한 번씩 이사를 다녔다. 그땐 왜 그렇게 자주 이사를 하는지 몰랐다.
그 여름 쌀이 떨어지는 날이 잦았다. 자식들이 굶는 걸 볼 수 없으셨던 아버님께서는 밖엘 다녀오셔서 백원짜리 지폐를 형에게 주시면 형은 내게 심부름을 시켰다. "덕수야, 국수집에 가서 국수 반관만 사와" 이 말을 듣고 백원을 들고 국수집에 가면 밀가루포대를 오려 띠를 둘러 묶은 국수 반관을 사고 십원을 거슬러 받아 오곤했다. 이 국수 반관으로 우리 사남매와 아버님까지 다섯 식구가 사흘 정도 살았다.
가족과 함께 어우러져 밥을 먹는 건 결국 정을 나누고 도탑게 만드는 과정이다. 더불어 이를 통해 서로 돈독한 관계를 형성하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가꾸게 된다. 하지만 겨우 생명을 연명하는데 급급한 음식은 모든 생각을 척박하게 만든다. 결국 이와 같은 사연으로 제법 오랫동안 어지간해서는 국수나 라면을 안 먹게 됐다. 하지만 어쩌다 맛보는 자장면과 콩국수 그리고 칼국수로 그나마 국수와의 인연을 이어왔다고 본다.
잔치나 생일 등 특별한 날엔 우리는 국수를 먹었다. 아침엔 미역국에 쌀밥을 먹고 저녁에 국수를 먹는 풍습은 아무래도 국수의 모양에서 그 의미를 이끌어낸 걸로 보인다. 국수는 대부분 그 길이가 긴데, 바로 이 부분에 의미를 둬 오래 살라는 뜻을 담아 생일에 국수를 먹었으리라. 물론 잔칫날 국수를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풍습도 이제 새로 탄생한 신랑과 신부가 오래 행복하게 살라는 축복의 의미였으리라 본다.
중국에서도 생일이면 국수를 먹는데 우리와는 다른 국수로 장수면(长寿面 : 長壽麵)이란 국수다. 한 가닥으로 길게 뽑은 국수를 그릇에 담고 여기에 계란 두 개를 얹어 국물과 함께 생일을 맞은 사람이 먹도록 하는데 끊어 먹지 않는다고 한다. 한 가닥의 국수와 계란 두 알은 국수 한 가닥은 숫자 1을 의미하고, 계란 두 알은 생긴 모양 그대로 0을 뜻하니 모두 합하면 숫자 100이 된다. 100세까지 살라는 축복의 뜻을 담아 장수면을 먹도록 한다는 얘기다.
이처럼 귀한 음식으로 대접받아 온 국수를 근 20년 가깝게 즐기지 않았으나 다시 국수를 즐기게 된 계기도 아버님 덕분이다. 1985년 봄 병환 중인 어머님을 모셔와 형과 간병을 했으나 결국 세상을 떠나셨다. 그 일로 아버님과 의절 아닌 의절을 하고 새천년이 되어서야 다시 모시기 시작했다.
아버님을 다시 모셨다고 해봐야 겨우 생신에 국수 두 번 아버님의 친구분들 모셔서 대접하고 세 번째 되던 해 생신을 두 달 앞두고 세상을 떠나셨으니 그리 긴 세월도 안 된다.
2001년 여름으로 아침식사를 하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당시엔 오색마을에 인터넷전용선이 들어오기 전이라 전화회선을 두 개 신청해 하나는 인터넷전용으로 모뎀을 연결해 사용할 때다. 전화를 받으니 아버님께서 "둘째냐"라 먼저 물으시고 "호박이 더 커지기 전에 얼른 따가고, 부추도 얼른 잘라야겠다"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