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 부도밭. 한국불교의 승맥을 잇는 종갓집답게 부도밭도 남다르다.
이돈삼
송광사는 우리나라의 삼보(三寶)사찰 가운데 하나인 승보(僧寶)사찰이다. 한국불교의 승맥을 잇고 있다. 한 마디로 한국불교의 종갓집이다. 신라 말기에 길상사로 창건됐다. 수선사, 정혜사라는 이름을 거쳐 16국사가 배출되면서 송광사가 됐다.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이 정혜결사의 도량으로 삼았다. 정혜결사는 불교공동체를 일컫는다. 기존의 귀족불교를 비판하며 불자들의 각성을 촉구한 불교혁신 운동이다. 지눌은 기득권을 쥐고 체제수호를 외치는 교종(敎宗)에 맞서, 참선수행을 통한 깨달음을 강조한 선종(禪宗)을 이끌었다.
송광사는 정혜결사를 거치면서 대가람이 됐다. 보조국사의 법통을 진각국사가 이어받으면서 16국사로 이어졌다. 승보사찰의 지위를 굳건히 지켰다. 경내에 16명 국사의 진영을 봉안한 국사전(國師殿)이 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송광사는 수준 높은 문화재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 보물창고다. 16국사의 진영을 봉안한 국사전과 목조삼존불감 등 4점이 국보로 지정돼 있다. 대나무 조각을 엮어 불경을 적은 경질(經帙), 대장경 목판을 보관하는 나무상자 경패(經牌), 금동요령(金銅搖鈴) 등 18점의 보물도 있다.
금나라에서 들여온 놋쇠로 만든 발우 능견난사(能見難思)와 비사리구시도 볼거리다. 능견난사는 접시와 흡사하다. 이리저리 포개도 빈틈없이 꼭 겹쳐지는 명물이다. 어찌나 가공기술이 빼어나든지, 똑같은 그릇을 만들려고 해도 만들 수 없었다고 한다. 하여, 눈으로 볼 수는 있어도 속을 헤아리기 어렵다는 뜻으로 이름 붙었다.
비사리구시도 명물이다. 구시는 스님들의 밥을 퍼 놓았던 큰 밥통이다. 싸리나무로 만들었다고 비사리구시다. 송광사의 구시는 느티나무의 속을 파서 만든 것이다. 한번에 4000명 분의 밥을 담았다, 쌀 7가마 분의 밥이 들어갔다는 말이 전해진다. 송광사에서 수행하는 승려가 많았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