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결핵협회가 국민 참여를 위해 열어놓은 크리스마스씰 쇼핑몰에서 내가 고르고 '기부'한 모빌과 에폭 마그넷.
장호철
크리스마스실(Christmas Seal)의 계절이 돌아왔다. 크리스마스실(결핵협회 누리집에도 '씰'로 표기하고 있지만 '실'로 써야 옳다)이라면 옛날 생각이 안 날 수가 없다. 초등학교 때는 크리스마스실을 본 기억이 전혀 없다. 중·고 시절에는 아이들 모두가 골고루 크리스마스실을 몇 장씩 받고 대금을 나누어 낸 것 같다. 강매(?)의 반발을 무마하는 방식이었던 셈인데 그걸 불만스러워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크리스마스실은 우표를 대신해 쓰는 것이 아니니 우리는 그걸 카드나 연하장에 장식처럼 붙여서 썼다. 겉봉 우표 옆이나 봉투 뒷면 풀 붙이는 자리 중앙에다 마치 봉인처럼 붙였다. 우리는 크리스마스실이 결핵과 관련 있다는 것, 그게 편지에다 붙이는 것이라는 것 정도만 알았다.
덴마크의 우체국장이 창안한 크리스마스실
크리스마스실을 우편물에다 붙이는 것은 기원에 비추어보면 제대로 쓰는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유럽에 결핵이 만연해 있을 때 연말마다 쌓이는 엄청난 우편물에 동전 한 닢짜리 크리스마스실을 붙이면 그 대금으로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많은 어린이가 결핵으로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고민했던 덴마크 코펜하겐의 우체국장 아이날 홀벨(Einal Holboell)의 아이디어였다. 그는 연말이면 쌓이는 크리스마스 우편물과 소포를 정리하면서 동전 한 닢짜리 '실'을 우편물에 붙여 보내도록 하면 그 동전을 모아 결핵 기금을 마련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1904년 12월 10일에 세계 최초의 크리스마스실이 발행되었고, 이 운동은 이웃 나라로도 전파되기 시작했다. 동양권에서는 1910년에 필리핀이 처음으로, 1925년에는 일본에서 실이 발행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실이 발행된 것은 1932년 일제 치하에서다.
캐나다의 선교 의사인 셔우드 홀(Sherwood Hall)은 크리스마스실 운동을 펴면서 한국인들에게 결핵을 올바르게 인식시키고, 모든 사람이 이 운동에 참여하게 하여 결핵 퇴치사업의 기금을 모으고자 했다. 이후 1940년까지 아홉 차례에 걸쳐 '실'이 발행되었지만, 태평양 전쟁 발발 직전 셔우드가 간첩 누명을 쓰고 강제 추방되면서 '실' 발행도 중단되었다.
해방 이후 1949년에는 과거 셔우드 홀을 도왔던 문창모 박사가 주동이 되어 '한국 복십자회'에서 실을 다시 발행하였다. 1952년에는 '한국 기독의사회'에서 실을 발행하였으나 크리스마스실 운동이 범국민적인 성금 운동이 된 것은 1953년 '대한결핵협회'가 창립되면서부터였다.
이후 크리스마스실 운동은 해를 거듭하며 발전해 왔지만,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운동이 정체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메일과 휴대전화 등의 보급으로 연말 크리스마스 카드와 연하장 발송량이 급격하게 줄면서 크리스마스실을 통한 모금 운동이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결핵 발생률·사망률 OECD 1위
결핵은 사회·경제적 수준이나 보건의료 서비스가 미흡한 나라에서 많이 발생하는 질환이어서 흔히 '후진국형 질병'으로 분류된다. 우리나라의 신규 결핵 환자 수는 2018년 현재 인구 10만 명당 65명이 넘는다. 일본(10만 명당 15명)의 4.3배 수준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1.1명)보다는 5.9배가 넘으니 OECD 국가 가운데 1위를 면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