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 재난, 참사로 인한 피해자, 유가족 등이 지난 1월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국회를 통과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안 이른바 ‘김용균법’의 실효성을 비판하며 위험의 외주화 중단과 진상규명위 구성을 촉구하고 있다.
이희훈
동시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의 일상적 적용이 그것이다. 2018년 12월 11일 태안화력에서 생을 마감한 고 김용균씨는 한국 사회에 산업안전보건법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그런데 잠깐 기억을 돌려보자. 혹시 콜센터에 전화할 일이 있을 때 상담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전화를 건 사람이 상담노동자에게 위해를 끼친 경우,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조처를 한다는 안내 문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2018년 10월 18일, 법 시행으로 인해 사업주가 노동자의 환경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정부는 노동자 보호를 위해 그렇게 기업을 강제할 수 있다. 실마리를 찾아보자.
산업안전보건법은 1981년도에 만들어진 법이지만, 그 법은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 결과 누구도 법을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존재하지 않았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1981년 이래로 정부가 무엇을 했는지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위험한 현장을 예방하기 위한 사업주의 의무를 자세하게 나열하고 있는데, 그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 아무것도 안 했다는 뜻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노동자라면 하는 일이 제조업이건, 건설업이건, 서비스업이건 상관없이 당신의 회사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을 언급하는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그 법에는 사고를 예방해야 할 의무뿐 아니라 질병을 예방해야 할 의무 또한 존재한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화상을 입지 않게, 배달 노동자가 무면허 운전을 하지 않게, 백화점에서 일하는 판매 노동자가 고객들에게 화를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사업주가 해야 할 예방 의무를 규정한다. 제조업 공장 노동자가 어디 가서 미끄러지지 않게 공장 바닥을 청결하게 해야 할 의무도 있고, 엘리베이터 수리 노동자가 일하러 들어가는 밀폐된 공간을 안전하게 만들어야 할 의무도 있다.
이 법은 일하는 모든 사람의 공간과 환경에 적용된다. 이런 작지만 중요한 노력이 쌓여 일하는 누군가의 아픔을 예방하는 법이다.
법전에서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산업안전보건법, 사업을 시작하는 기업들이 꼭 지켜야 하는 의무로 만들어보자. 사업을 하는 중간에라도 꾸준히 위험 예방조치를 해야 함을 잊지 않도록 끊임없는 감독과 일벌백계가 중요하다. 안 쓰던 돈을 들여야 하는 일이고, 기업에서도 끊임없는 관리가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산업안전보건법을 현실에서 존재하게 해야 한다. 사람들이 사고, 질병, 죽음으로 가는 길목에, 정부가 서서 지켜줘야 한다. 아, 며칠 전 종로에서 보석을 만드는 노동자들에게 산업안전보건법 강의를 했는데, 이런 말이 나왔다. "우리가 학문하는 것도 아니고, 뭔 사업주 조치나 물질안전보건자료가 이렇게 어려워?", 지금 산업안전보건법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동자들이 살기 위해 어려운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게 쉽게, 현실감 있는 정책을 써주길 바란다.
정부와 국회는 공식적으로 어떤 말이라도 해라. 지금도 늦었지만 이해관계자가 너무 많아 아무 것도 못 하겠으면, 일단 청와대와 국회에 노동자 사망 현황판이라도 만들어보자. 365일 중에 노동자인 사람이 안 죽는 날이 며칠 없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면 달라지지 않겠나. 우리, 한 발짝이라도 내딛자. 제발.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비정규직, 하청, 일용직, 여성, 청소년 이주 노동자들과 함께 건강하고 평등한 노동을 꿈꿉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