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돌담오래전 양양지역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던 돌담과 흙돌담을 이제는 만나기 어렵다. 관광지로 1980년대 개발된 오색마을은 직전까지 돌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으나 획일적인 개발로 그 정취가 사라졌다.
정덕수
음식은 분명히 하나의 문화다. 그것도 유구한 역사와 함께 숨 쉬며 발전해왔고 발전해갈 살아있는 문화생명체다.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풍부하게 생각하고 지혜롭게 적응하며 음식문화를 발전시켜왔는지는 김치나 장(醬)류 음식만 보더라도 확인된다.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음식이 되고, 또 다른 재료와 어우러지며 전혀 새로운 형태로의 맛을 낼 줄 아는 김치와 간장, 고추장, 된장 아닌가.
그 모두를 아우르며 메밀을 재료로 하여 강원도의 음식문화는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왔다. 메밀막국수는 그 기원이 언제부터였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지금과 같은 형태 이전에도 제면(製麪)기법은 존재했고 이용했으리라 봄이 옳다.
홍두깨로 두리반에 반죽을 밀어 얇게 만든 다음 칼로 썰어 면을 만드는 방법이 먼저일 수도 있는 일이고, 시루나 성긴 체(얼기미 : 구멍이 큰 체를 이름)에 올려둔 반죽이 구멍을 통해 아래로 빠지는 현상을 발전시켜 분틀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
메밀로 만든 음식으로는 국수와 밥도 있지만 팥소(팥앙금)를 넣은 부꾸미와 김치나 만두를 빚을 때 넣는 소를 채운 전병도 있다. 그리고 메밀묵도 빠질 수 없는 메밀을 재료로 한 음식이다.
메밀전병은 예전엔 '메밀소뎅이'라고도 했다. 소뎅이는 솥뚜껑을 뒤집어 화로에 올려 기름을 두룬 뒤 여기에 밀가루나 메밀가루와 같은 반죽을 얇게 펴 부쳐낸 전(적)을 이르는 또 다른 말이기도 한데, 어떤 연유에서인지 만두소처럼 김치와 두부, 돼지고기, 시래기 등을 다져 넣은 메밀전병도 메밀소뎅이라 했다.
요즘에야 메밀전병도 상품으로 제조되어 각 음식점에 납품을 하는 업체가 있다. 거기에 메밀을 직접 빻아 사용하는 음식점도 만나기 어렵다. 하물며 맷돌로 메밀껍질을 벗기는 과정인 '능군다'는 말도 알아듣지 못하는 이도 "우리는 메밀막국수가 전문"이라는 세상이니.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요즘은 메밀가루가 그냥 반죽만 하면 되게 나와요"라 말엔 도리어 질문한 입장에서 당황한다.
이쯤 되면 메밀막국수에 대해 왈가왈부를 할 일이 아니라 스스로 불만이 있다면 대안을 제시할 줄 알아야 된다는 걸 알아차렸으리라 본다. 중국에서 배워간 밀가루로 만든 국수가 서유럽 전역에서 300여 종이 넘는 파스타로 새롭게 탄생했듯, 메밀막국수의 맛이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불만이라면 스스로 길을 모색하면 된다.
대자리 깔린 황토구들장에 엉덩이 뜨거워 비비 몸을 비틀며 톡 쏘는 겨자는 물론이고 설탕과 식초까지 욕심을 부려 먹던 풍경도 만나기 어렵다. 그만큼 세상이 변했고, 누구나 자신이 최고라 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이다. 이미 원조란 이름이 상호로 사용되었다고 그 곳이 원조가 아니고, 옛날이나 전통이란 말을 끌어다 붙였다고 옛날 방식이나 전통적인 형태가 아니란 거 정도는 충분히 알게 됐다.
맛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변화한다. 내 입맛에 맞지 않다고 타박할 일이 아니라 어딘가에 있을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을 일이다. 객관적이지도 않은 여행지에서 어쩌다 먹게 된 음식을 자랑한 거에 현혹되고, 이제 막 문을 연 업소의 부탁으로 소개하는 누군가의 얘기를 사실로 믿고 찾아가 실망하는 일은 조금만 노력하면 피하는 거 어렵지 않다.
이 정도로 이번 이야기를 끝내고 다음 이야기부터는 양양군의 6개 읍면의 막국수집들에 대해 소개하겠다. 최소 1개면에 한 꼭지의 이야기는 족히 될 일이고 보면 최소 6편으로 나뉘어 소개되리라 본다. 물론 그 수가 현저히 많거나, 소개할 자료가 많은 경우엔 더 늘어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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