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인소설 회색인 중에 나는 한가하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배남효
작가 최인훈도 나와 같은 의미에서 표현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깊은 뜻을 담은 문장으로 사용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단순하게 유추하면 한가해야만 생각을 많이 할 수 있고, 그래서 한가한 것을 바로 생각하는 것으로 등치시켰을 수 있다.
그러면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와 '나는 한가하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이 서로 같아지게 된다. 어쨌든 최인훈 작가 덕분에 한가한 인생에 대한 나의 신통찮은 철학을 더욱 멋있고 간명하게 대변해줄 수 있는 문장을 찾아내어 좋았다.
또 조선시대에 최고의 천재로 손꼽히는 매월당 김시습도 '일생에 일없기로 나만한 이 있을까(一生無事莫如吾)'라는 싯귀로 자신의 한가한 처지를 노래한 바 있다. 세조의 왕위 찬탈에 분노하여 벼슬살이를 포기하고, 평생 산천을 유랑하며 살았으니 한가롭기가 그지없었을 것이다.
김시습이 그렇게 한가로운 인생을 살게 됨으로써, 역설적으로 금오신화를 비롯하여 주옥같이 빼어난 시문을 많이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벼슬살이로 권력을 다투며 바쁘게 살았다면 도저히 이룰 수 없었던 문학적인 성과를 오히려 한가한 삶을 통해 이루어낸 셈이다.
한가한 인생을 선택함으로써 자신만의 부귀영달에 빠지는 삶에서 벗어나, 후세의 사람들과 시문으로 소통하며 영생을 누리게 된 것이다. 그러니 김시습이야말로 '나는 한가하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에 아주 잘 맞는 인생을 살아간 대표적인 인물로 내세울 만한 것이다.
가끔 주위의 사람들이 너무 바쁘게 정신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한가하게 살아보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자신이 보내는 시간을 음미하면서 한가하게 살아봐야 인생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해준다. 그러나 인생에 이룬 바도 없이 나이들어 보잘 것 없는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듣는 사람도 잘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최인훈 작가도 '나는 한가하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글까지 썼으니, 이제부터는 소설가 최인훈의 위력을 빌려 좀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동네 도서관에서 우연히 최인훈의 '회색인'을 다시 만나 내 생각을 그대로 대변하는 이 말을 찾게 된 것이 너무나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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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가하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100% 공감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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