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의 윤상원 열사와 영혼의 부부가 된 박기순 열사
5.18 기념재단
지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중가요를 들라면 대부분 「임을 위한 행진곡」이 뽑힐 것이다.
대학가ㆍ노동계ㆍ시민운동의 행사에는 어김없이 이 노래가 불리고, 최근에는 홍콩을 비롯 중국ㆍ타이완ㆍ캄보디아ㆍ태국ㆍ말레이시아ㆍ프랑스 등 여러 나라의 민중시위에서 현지어로 번안되어 불리고 있다. 한국에 파견되었다가 귀국한 이주노동자들에 의해 전파되거나 각국의 인권운동가들의 한국 민주화운동 연구과정에서 알려지고 있다.
이 노래가 창작된 것은 5ㆍ18민주화운동 1주년인 1981년 5월 작가 황석영이 사회운동가 백기완의 옥중시 「묏뵈나리」의 일부를 차용해 지었고, 전남대 재학생 김종률이 작곡했다. 처음에는 「님을 위한 행진곡」이었으나 우리말 표준어 규정에 따라「임을 위한 행진곡」이라고 부른다.
황석영이 이 노래를 짓게 된 것은, 5ㆍ18 당시 전남도청을 사수하다가 계엄군의 총격으로 숨진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과 광주에서 '노동야학'을 운영하다가 사망한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에 헌정하기 위해서이다. 윤상원과 박기순은 함께 '노동야학'에서 일한 동지였다.
1982년 2월 윤상원과 박기순의 유해를 광주 망월동 공동묘지 (현 국립 5ㆍ18민주묘지)에 합장하면서 영혼결혼식을 거행할 때 처음 공개된 이후 대학가와 노동계를 중심으로 널리 퍼지게 되고, 대표적인 민중가요로 불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