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 골목돈의동에서 그나마 문턱이 낮았던 쪽방 앞 골목. 휠체어를 돌릴 수도 없을 정도로 좁다. 휠체어를 대어놓으면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없다.
강민수
할 수 없이 주거취약계층 전세임대주택을 신청했다. 9천만 원까지 전세자금을 대출해준다. 자부담은 50만 원이다. 이만한 돈으로 엘리베이터 있는 원룸을 구하기는 힘들지만, 경기도로 나가면 1층 방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문제가 생겼다. LH공사에서 "이혼이 되지 않은 상태이니 배우자에게 소득조사 동의서를 받아오라"고 한다. 7년 전에 다리를 절단하고 가족과 관계가 끊어져, 병원, 시설생활을 거쳐 노숙 중이라 설명했다. "지침상 어쩔 수 없으니 이혼을 하라"는 말에 더 할 말이 없다. 임대주택과 이혼 중에 하나를 고르라는 말이다.
서울시공익법센터를 통해 이혼소장을 제출했다. 가족관계증명서에 배우자 주민등록번호가 나오지 않아 1년 반에서 2년 정도 걸린다 했다. 2년 동안 거리노숙을 하다보면 임대주택 신청자격이 생길 것이다.
이런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한 '훌륭한' 제도가 있다. 긴급복지지원법에 따라 긴급지원대상자로 선정이 되면 지자체의 추천으로 LH 일반 전세임대주택을 공급받을 수 있다. 이 경우 9천만 원 기준으로 보증금 450만 원(5%)'만' 자부담하면 되고, 2년 후 연장계약 시에는 LH공사의 심사를 받는다. 진수님의 경우, 2년 안에 이혼을 해야 하는 셈이다. 구청 주거복지팀에 추천을 요청했다.
"다리를 절단하고 거리노숙을 하고 있다고 해서 위기상황이라 볼 수는 없다"고 한다.
"긴급지원대상자로 LH공사에 추천을 하려면 배우자 소득조사를 해야 한다"고 한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고 한다.
"특혜를 줄 수 없다"고 한다.
보건복지부의 <2019 긴급지원사업 안내>에 따르면, 노숙한 지 6개월이 되지 않은 초기 노숙인에 한해 긴급지원을 신청할 수 있다. 화재가 나거나 월세가 없으면 위기상황이고, 집에서 나와 6개월 미만이면 위기상황인데, 휠체어 타고 들어갈 집이 없어 6개월 넘게 노숙하면 위기상황이 아닌 셈이다. <안내>에는 '이혼이 되지 않았더라도 생계와 주거를 달리한다고 확인되면 소득조사에서 제외한다'고 돼 있지만, 구청에서 "(긴급복지지원)법률에는 근거가 없지 않냐"고 하니 할 말이 없다.
진수님은 자녀도 두 명 있다.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려 수급이 안 될 뻔했지만 사유서를 제출했다. 복지조사과에서 자녀들과 연락이 되어 배우자 주민번호를 알아냈다고 한다. 다행이다. 임대주택 신청을 하려면 소득조사 동의서를 받아야 하니, 연락처를 알 수 있는지 물었다. "배우자와 관계가 끊어졌다고 보고 수급을 주는 거니, 아내 분과 연락해 소득조사 동의서를 받으면 안 된다" 한다. 수급과 임대주택 중 하나를 고르라는 말이다.
어차피 월세를 못 내니 당연히 수급을 택할 수밖에 없다. 수급을 받아 거리노숙을 하며 보증금 500만 원을 모아 엘리베이터가 있는 원룸에서 월세와 공과금 50만 원을 내고, 남는 25만 원 정도로 생활하면 될 일이다. 법 앞에선 간단한 일이다. 어쩔 수 없으니.
법 앞에 한 문지기가 서 있다. 이 문지기에게 한 시골 사람이 와서 법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청한다. 그러나 문지기는 지금은 그에게 입장을 허락할 수 없노라고 말한다. 그 시골 사람은 곰곰이 생각한 후, 그렇다면 나중에는 들어갈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가능한 일이지" 하고 문지기가 말한다. "그러나 지금은 안 돼."
- <법 앞에서>, 카프카
2016년에도 서울역 앞 광장엔 휠체어를 탄 '노숙인'이 있었다. 매일 문이 열리기만 기다렸다. 법은 '아직은' 열어줄 수 없노라고 말했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서울역 광장에 없다. 오늘도 법은 여전히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우리는 무어라 답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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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행동 회원입니다. 2014년 11월부터 서울역에서 거리와 쪽방의 홈리스분들을 만나며 관계를 맺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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