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KBS 방송국.
윤성효
"지방방송 좀 꺼라"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여러 명이 모인 자리에서 이따금 농담처럼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농담처럼 할 뿐, 결코 농담으로 하는 말은 아니다. 언로를 독점하려는 누군가의 의도에서 나오는 말이다.
농담 같지만 결코 농담이 아닌 그 말은 한국 방송의 구조적 모순을 담고 있다. '지방방송 좀 꺼라'는 국가권력 혹은 수도권의 요구를 담은 한마디라고 할 수 있다.
돈과 기업과 권력만 수도권에 편중된 게 아니다. 텔레비전 방송 역시 예외가 아니다. 수도권 중심으로 편제된 TV 방송은 서울의 가치관을 전파하는 기능은 해도 지방의 가치관을 전파하는 기능은 거의 수행하지 못한다. 그래서 TV 방송을 시청하다 보면 서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쉽게 알 수 있어도, 지방 사람들 특히 제주·강원·충북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기 어렵다.
서울 사람들이 원하는 '지방 소식'
물론 지방에도 TV 방송국들이 있다. 지방에도 KBS와 MBC가 있고, 민영방송국들이 있다. 하지만, 지방 TV가 전국 여론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미미하다. 지방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방 TV의 영향력이 미미하다면 수도권 TV라도 지방의 목소리를 잘 전달해줘야 하건만, 그렇지도 못하다. 저녁 6시부터 한 시간 정도는 수도권 TV에서 지방 소식을 접할 수 있지만(예컨대, KBS1 <6시 내고향>), 그 시간대에 나오는 지방 소식은 상당 부분 서울시민의 관점에 입각해 있다. 지방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갖고 있으며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들을 기회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는다.
그 시간대에 수도권 TV에서 주로 접하는 것은 지방의 먹을거리나 볼거리들이다. 그런 정보들도 물론 유익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그 정보들마저 서울시민 관점으로 제공되는 일이 많다는 점이다. 서울 사람들의 구미를 당길 만한 음식, 서울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힐링을 느낄 만한 관광지가 주로 소개되는 경향이 없지 않다.
2005년 8월 <언론과학연구> 제5권 제2호에 실린 문종대·이강형의 논문 '내부 식민지로서의 지역방송 재생산에 관한 연구'는 "현행 방송구조 하에서 지역 정서를 반영하는 지역 생활, 문화, 여론 등이 전국적으로 방영될 수 있는 기회는 아주 제한되어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한 바 있다.
수도권 TV에서 지방 소식이 비중 있게 보도되는 것은 주로 자연재해가 일어났을 경우다. 장마나 태풍, 지진 등으로 온 나라가 들썩거릴 정도가 돼야 수도권 TV가 지방을 비춰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보도들도 상당부분은 중앙정부의 관점을 담고 있다. 자연재해로 인한 경제적 영향이나 국가적 손실을 가늠하는 데 필요한 정보들이 TV 화면에 비칠 때가 많다. 해마다 지방 사람들만 자연재해 피해에 노출되도록 방치하는 구조적 모순에 관한 정보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만약 지역적 편향 없이 자연재해를 보도하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면, 폭우·태풍·지진 등으로 인해 피해가 속출할 당시뿐만 아니라 사후에도 지방 소식이 지속적으로 보도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2017년 포항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이들이 2년째 흥해실내체육관에서 텐트를 치고 생활하고 있지만, 서울 지역 TV에서는 이런 뉴스가 어쩌다 한번 보도될 뿐이다.
만약 서울에서 자연재해가 발생해 잠실실내체육관 같은 데서 시민들이 텐트를 치고 생활한다면, 상황이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하루에도 수없이 이에 관한 뉴스가 TV에 나올지 모른다. 재해구제에 나서는 중앙정부의 태도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목포MBC의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