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홍콩 침사추이에 위치한 홍콩이공대학교. 현재 30명가량으로 추정되는 학생들이 경찰의 포위로 학교를 빠져나오지 못한 채 9일째 발이 묶여 있다.
이희훈
- 지난 17일 경찰이 홍콩이공대를 무차별 진압했다. 경찰이 학교를 포위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심경이 어땠나.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나를 비롯해 학교를 지키기 위해 남아있던 사람들 모두 일순간 패닉 상태가 됐다. 절망감도 들었다. 체포되거나 다치지 않고 경찰의 포위망을 벗어나기란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분노도 치밀었다. 어떻게 경찰이 대학교에서 총기를 휘두를 수 있으며, 내 학교에서 왜 학생인 내가 도망쳐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18일 탈출에 성공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해준다면?
"먼저 17일의 일이다. 경찰이 끊임없이 시위대를 공격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학교 내부도 상당수 망가졌으며 시위대가 보유한 자원들(무기, 식료품)도 빠른 속도로 고갈됐다.
초반에는 홍콩이공대에 있던 시위대 다수가 상당히 흥분해있었다. 시위대가 경찰의 무기 차량을 불태운 동시에 경찰의 공격을 단기간에 중단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일순간의 일이었다. 17일 저녁, 홍콩이공대가 경찰에 의해 완전히 포위됐다는 것을 깨닫자 시위대의 사기는 급속도로 저하됐다. 모든 것이 시위대에게 불리한 상황으로 급변했다.
그리고 18일, 시위대는 오전 7시부터 총 네 차례 탈출을 시도했다. 나를 비롯한 몇몇은 성공했지만, 많은 사람이 경찰에 붙잡혔다. 다친 사람들은 탈출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18살 아래의 사람들은 우울함과 무기력함 때문에 더 힘들어했다."
- 당시 경찰의 진압은 어떻게 이뤄졌나.
"진압 초기, 경찰은 대학에 최루탄을 수차례 발사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학교에 진입을 시도한 건 아니다. 그러나 이후 홍콩이공대 인근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자, 진압 경찰들은 시위대 양쪽에서 물대포를 쏘고 고무탄을 발사했다. 뒤이어 '랩터(홍콩 경찰 내 특수전술반을 비하해 부르는 말)' 일행이 뒤에서 시위대를 향해 돌진했고 시위대 상당수는 체포돼 구타당했다.
당시 경찰은 이미 진압된 사람들을 계속 때렸고 무차별적으로 무기를 사용했다. 경찰은 폭력을 멈출 의지가 전혀 없어 보였다. 이때 자행된 경찰의 폭력은 분명 불필요했다."
- 당시 학교 안에 있던 시위대는 어떻게 경찰에 맞섰나.
"시위대는 부족한 자원을 최대한 사용해 나름의 방법으로 저항하려 했다. 경찰 진입을 막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기도 했다. 초반까지 학생들과 시위대의 사기는 분명 좋았다. 왜냐하면 학교 인근 거리에서도 함께 경찰에 맞서고 있는 홍콩 시민들의 행동이 우리에게 크나큰 지지가 됐기 때문이다. 홍콩 시민들과 함께한다는 연대가 우리를 계속 맞서게 만들었다."
- 이 기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단결한 것을 본 적이 몇 안 된다. 당시 시위대는 우리 홍콩이공대를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경찰에 맞섰다. 그런데 시위대 대다수는 홍콩이공대 학생도 아니었다. 이게 정말 대단한 일이다. 사실, 시위대 가운데 1/3 정도만 홍콩이공대 학생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부분 중학생이거나 다른 대학 학생, 혹은 일반 시민들이었다. 이들을 홍콩이공대에 남아 있게 한 것은 우리 땅(학교)을 지키겠다는 신념 하나뿐이었다."
"경찰의 횡포와 정부의 불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