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당시 희생된 시민들. 1980.5.25
연합뉴스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은 무력으로 전남도청 등을 공격 '과감한 조치'를 취하면서 숱한 인명을 살상했음은 다 아는 바와 같다.
『한국일보』는 5월 18일 「시국수습 단안의 방향」이란 사설에서 시국수습에 관해 "정부와 정치인이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는 하나마나한 일반론을 전개하고, 20일자 「위기 속의 생존권 수호」에서는 "5ㆍ17 조처의 불가피성을 강조한 최 대통령의 특별성명에 접하고 우리 겨레의 슬기, 즉 이지(理智)의 힘을 일깨울 때라고 믿는다"고 완곡한 표현으로 이 조처를 인정하고 있다.
『한국일보』가 온갖 둔사로써 광주항쟁을 호도한 것은 23일자 「광주일원의 비극적 사태」란 사설이다. 사설은 서두에서 "18일 이후 광주 일원에서 전개되고 있는 비극적 사태는 이미 진행된 것만으로도 국사상 두고두고 기록될 사건임에 틀림이 없겠다. 다음에 올 것이 무엇이고 또 어떤 것이냐에 관해서는 누구도 예측 못하거나 혹은 말할 바 못된다. 우리 모두는 방금 이 순간에 국운의 백척간두와 국민의 사생안위에 가름에 서서 후세의 역사 앞에 경건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어야 할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처절한 살욕극을 지켜보면서 '국사상 두고두고 기록될 사건'이라는 표현이나, '후세의 역사 앞에 경건한' 따위의 어휘는 언어의 유희, 용기없는 언론의 둔사일수밖에 없다. 이 사설은 이어 엉뚱한 방향으로 논지를 전개한다.
"돌이켜 보면 한국적 심성에 깃들인 '한'이라는 누적된 역사적 불행에 연유한 것으로 심적인 공감대를 가르킨 말이다"
"양반층의 '청한문학', 근대화 선각자들의 '계몽문학', 현실도피형의 일부 소외권 지식인에 의한 '멋의 문학'을 제외하고는 대중적 기반을 가진 온갖 문학예술이 한에 젖어 있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미학 범주로서의 '멋'이란 도피 형식의 비사회적 반응임에 그쳤다. 그것은 한의 일시적 발산형태이지 해결의 출로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누가 겨레의 한을 풀 수 있을까. 우리 자신이다. 그러기 위해 무엇을 할까. 우리 모두의 슬기와 날램을 한데 모아 진정한 화합을 지향해야 한다."
'광주일원의 비극적 사태'라는 초미의 현안을 다루는 7~8매짜리 사설에서 문화사나 문학사상에서나 다룰 만한 '한'과 '멋'에 관해 장황히 설명하면서 정작 언급해야 할 대목에서는 꼬리를 감추고 있다.
이 신문은 「광주사태 속의 북괴동향」(5.24), 「광주사태의 평화적 수습책 - 대화로 해결하려면 무기반환해야」(5.27), 「광주사태의 수습단계」(5.28) 등 사설을 잇따라 게재한다.
특히 「광주사태 속의……」사설에서는 "필시 서울의 학생데모와 광주사태를 바라보면서 김일성은 지금 대남정세 상황판 앞에 쭈그리고 앉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그 무슨 결정적인 시기와 여건이 닥쳐왔다고 보면 불장난을 좀 하려들지 모른다"라고, 예의 안보논리를 적용하여 광주항쟁을 '주눅' 들이고자 했다.
사태 초기 5일간 무사설로 결기를 보였던 『동아일보』는 「북한은 오판말라」(5.26)는 사설을 실어 언론의 '북한 신드롬'을 내보였다. 이 사설은 "김일성은 행여 어떤 희망을 걸고 대남적화 책동에 열을 더 내는 일은 즉각 중단하고 평화통일의 기본조건인 남북대화에 성심으로 임해 줄 것을 촉구하며 한국의 반공태세를 오판하지 말도록 거듭 경고하는 바이다"라고 썼다.
한국의 신문들이 하나같이 북한문제를 들고나선 것은 혼란기에 발생할지 모르는 북한의 책동을 경계하자는 경고의 의미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관심을 밖으로 돌리려는 제도언론들의 통속성이 작용한 것이다.
『동아일보』는 5월 28일 「계엄군투입 이후의 과제」에서 사태의 본질이나 책임규명보다 '민심수습'이란 추상어로 지면을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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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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