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이마라 강을 건너는 얼룩말 무리
유최늘샘
아프리카 여행은 비싸다?
마사이 마라 사파리를 마치고 나이로비에서 버스를 타고 나망가 국경을 넘어 탄자니아에 도착했다. 탄자니아 북부에는 세렝게티, 빅토리아 호수 옆으로 아프리카에서 제일 높은 산, 5895미터 높이의 킬리만자로산이 있다. 정확한 거리를 확인한 건 아니지만 지도에서 볼 때 킬리만자로는 동아프리카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 이집트에서부터 시작한 아프리카 육로 종단 여정의 절반이 지났다고 생각하니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프리카 종단을 시작하기 전, 터키 괴레메에서 만난 사진가 구준호씨에게 아프리카 여행 이야기를 청해 들었다. 준호씨가 했다는 아프리카 남부 트럭킹(Trucking) 여행은 몇 주 동안 수 백만 원 가격이라 나는 엄두가 나지 않았고, 아시아에서 온 황인종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돌을 던지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만났다기에 조금 무섭기도 했다.
나보다 먼저 아프리카를 가로지른 다른 여행자들에게도 종종 '아프리카 여행은 물가 비싼 유럽보다 더 비싸다'는 얘기를 듣고 걱정했는데, 아프리카 절반을 육로로 종단해 보니 나에게 아프리카 여행은 다행히 비싸지 않았다.
다른 대륙에는 거의 없는 나라별 비자비와 개인적으로 갈 수 없는 화산 지역이나 동물 사파리 같은 여행사의 단체 투어를 제외하면, 이동비와 숙박비, 식비는 저렴한 편이었다.
킬리만자로 입장료와 숙박비는 2박 3일에 무려 1000달러 이상. 남미 파타고니아에서 남극으로 가는 배삯만큼이나 비쌌다. 산으로 장사를 하다니. 100만 원이면 내가 두세 달을 여행할 수 있는 금액이다. 킬리만자로는 멀리서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유명한 장소를 돈 때문에 포기할 거면 세계일주를 왜 하냐'라는 얘기도 종종 들었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다. 멀리서라도 그 모습이 보이니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유명 관광지보다는, 아프리카 대륙을 가로지르며 만나는 숱한 사람들과 풍경을 더욱 오래 기억하고 싶다.
"구름인가 눈인가 저 높은 곳 킬리만자로 / 오늘도 나는 가리 배낭을 메고
산에서 만나는 고독과 악수하면 / 그대로 산이 된들 또 어떠리"
복작복작 완행버스를 타고 킬리만자로 아랫마을 모시(Moshi)로 가는 길, 마침내 킬리만자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수 조용필의 노랫말처럼, 처음엔 구름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눈 덮인 킬리만자로였다. '구름인가 눈인가'라니, 얼마나 정확한 표현인지,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부른 조용필이나 <킬리만자로의 눈>을 쓴 헤밍웨이는, 이곳에 와 본 것이 틀림없으리.
이상하게도 케냐나 잠비아, 보츠와나나 말라위에서 남한으로 가는 비행기보다, 거리가 더 먼 아프리카의 남쪽 끝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남한으로 가는 비행기 가격이 더 저렴했다.
지난해 콜롬비아 수면제 강도에 이은 에티오피아 노상 강도 사건으로 세계일주의 의지가 다시 한 번 크게 주춤했으나, 이곳 아프리카의 중간에서 남한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남아공까지, 아프리카의 끝까지, 강도에게 입은 상처를 치유하며, 나머지 여정의 절반도 걸어가리라.
아메리카의 끝,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에서 이미 확인했듯이, 아프리카의 끝에 마침내 도착해도, 무언가 특별한 보물을 발견하지는 못할 것을 알고 있다. 마음먹은 만큼만 산다고 하던가. 이 길의 끝에 아무런 특별한 것이 없을지라도, 내가 마음먹은 아프리카 종단을, 나의 세계일주를 끝까지 마치고 싶다.
"사파리 은제마 Safari njema! 좋은 여행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