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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폭력 1위는 가정폭력... 가해자 처벌, 피해자에게 맡겨선 안돼"

[여성폭력 추방의 날 인터뷰] 1366대전센터 정현주 센터장 "오늘도 생명줄을 던진다"

등록 2019.11.25 10:12수정 2019.11.27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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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5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International Day for the Elimination of Violence against Women)이다. 이날을 기념해 여성폭력 실태가 어떤지, 24시간 위기전화 '대전1366'의 정현주 센터장을 인터뷰 했다. 정 센터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15일 1366대전센터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정현주 대전1366 센터장 왼쪽이 대전1366 정현주 센터장
정현주 대전1366 센터장왼쪽이 대전1366 정현주 센터장이은하
  
1366대전센터는 여성폭력 위기전화다.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문제를 다룬다. 24시간 운영되기 때문에 피해자가 신변의 위험을 느낄 때, 아무 때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유관기관과 연계되어 있다는 게 큰 특징이다. 식사나 의료지원, 긴급피난처 등을 지원한다. 정부가 전문성을 인정받은 민간기관에 위탁해 운영한다.

대전의 경우 대전YWCA(대표 김정민, 이하 대전Y)가 운영한다. 상담 인원은 모두 17명. 2018년 한 해 동안 1만6044건을 상담했다. 폭력 유형은 가정폭력이 가장 많다. 모두 7818건. 전체 폭력 중 50%가 넘는다. 그다음이 심리 정서 1250건, 성폭력 1137건, 데이트 폭력 615건, 가족 문제 548건, 부부갈등 378건, 정신 문제 317건, 이혼 170건, 경제문제 94건, 중독 56건, 이주 지원, 성 상담 18건 순이다. (단순문의: 2154건, 기타 끊어짐 1273건 제외)
 
놀라운 점은 가정폭력 피해자 중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48.9%다. 정현주 센터장은 이 부분이 가장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돌아가는 순간부터 계속 또 맞는다는 걸 피해자들 모두 잘 알아요."

겨우 신발만 신은 채 때리는 남편으로부터 도망쳐 나온 피해자를 긴급구조해 데려왔는데,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할 때 억장이 무너진다고. 이들이 돌아가는 이유는 명확하다. 살길이 없어서다. 아이가 어리거나 원가족이 피해자를 지지하지 않으면  그런 결정을 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 '그만큼 보호시설로 가겠다' 결심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피해자를 삼중고에 시달리게 하는 사회 탓이 크다. 남편에게 맞는 것도 억울한데, 가정폭력을 다루는 법률이 여성 입장을 대변 못 한다. 경제적 독립을 지원하는 정책도 미진하다.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맞았는데도 가해자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 상담만 받아요. 이런 일이 집 밖에서 일어났다면 형사처벌을 받을 일이에요."

정 센터장은 가해자 처벌을 피해자에게 판단하도록 맡겨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해자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남편을 처벌하겠다고 말하지 못해요. 법이 가정 보호에 치중을 하는데, 폭력에 더 초점을 두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합니다."

폭력의 악순환이 안 끊어지는 데는 가해자 처벌이 약한 이유도 작용한다는 것이다. 의자로 부인을 때리고 아이를 위협한 사람인데, 돈 잘 버는 능력 있는 가장이라고 말하는 사회 시선도 반드시 바뀌어야 할 부분이다. 자녀와 살려고 집을 나간 건데 탈 가정이 아닌 가출로 표현하는 용어도 성평등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지난해 1366대전센터는 가정폭력 피해자 자립을 돕는 취업 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여성가족부가 시범 사업으로 전국에서 두 개 기관만을 선정했다. 1366대전센터도 그중 한 기관이다. 대전Y가 여성인력개발센터를 운영하면서 갖게 된 인프라와 경험을 높게 샀기 때문이라고.

"단체급식조리사 양성 교육을 했어요.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탄력근무로 취업을 많이 시키는 직업이거든요. 피해자 16명 중 8명이 취업을 했으니까 취업률은 괜찮은 편이었죠."

자립 욕구에 대한 변화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우울감은 좋아졌다. 폭력피해자들은 대체로 우울감이 높고 자존감이 낮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힘을 내 한식 조리사 국가자격증을 딴 거잖아요.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굉장히 정서적 지원을 받았고요. 대개 폭력 피해자들은 낙인을 두려워하거든요. 이런 걸 티 내지 않고 지원받았던 경험, 내 노력으로 취업했다는 사실. 이런 것들이 이분들을 굉장히 기운 나게 했어요."

정 센터장은 취업률을 50% 이상 끌어올리기 위해 극복해야 할 장애물을 발견했다. 대체로 이혼을 안 한 피해자들은 자신이 있는 곳을 남편이 알아낼까 두려워한다. 취업을 해 4대 보험 가입을 하면 신분 노출 위험이 생긴다. 물론 개인정보 보호법은 이를 금한다. 하지만 부부라는 말 한마디에 이 원칙이 무너질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취업을 안 하려고 한다. 이런 틈새를 보완할 제도적 실행이 필요하다.

보호 시설을 퇴소할 때 지원받는 금액도 현실에 맞게 조정되어야 한다. 지금은 500만 원을 지원받는다.

1366대전센터는 찾아가는 상담도 한다. 피해자가 전화하면 찾아간다. 상담 장소는 도움을 받아 집 근처 주민센터나 파출소 같은 관공서의 조용한 방이다. 상담원이나 피해자 모두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찾아가는 상담은 갈수록 주는 추세다. 정현주 센터장은 이를 걱정했다. 더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방법을 간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1366대전센터 사무실을 찾았을 때 쇠문과 마주 서야 했다. 초인종을 누른 뒤 일일이 신분 확인을 한 뒤에야 들어갔다. 쇠문의 안과 밖은 10리 길 만큼 달랐다. 센터는 밝았다. 노란색 벽지, 은박 금박 위에 글자 하나하나를 새긴 '환영한다'는 문구. 이를테면 해바라기방처럼 방마다 걸려 있는 꽃 이름들. 생명을 살리기 위해 따뜻함을 불어 놓는 곳이었다.

'폭력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는 했지만 아직도 말았다.'
'피해자가 떠돌아다니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폭력을 오래도록 당하다 보니 무기력하게 산다. 적절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국립의료원이 생겼으면 좋겠다.'

오래도록 정현주 소장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날 #여성폭력 #가정폭력 #대전1366 #대전YW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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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밥 대표이자 구술생애사 작가.호주아이오와콜롬바대학 겸임교수, (사)대전여민회 전 이사 전 여성부 위민넷 웹피디. 전 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연구원. 전 지식경제공무원교육원 여성권익상담센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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