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낳은 아이가 예쁘기도 하고, 혼자 육아를 감당해야 하는 친구가 안쓰럽기도 해서 나는 틈이 나면 친구의 집에 가서 집 정리를 해주기도 했고,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했다. (사진은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20대 때 '베프'였던 친구는 27살에 결혼해 28살에 첫 아이를 낳았다. 이듬해에는 둘째를 연년생으로 낳았다. 2년 사이 두 아들의 어머니가 되었다. 아이가 예쁘기도 하고, 혼자 육아를 감당해야 하는 친구가 안쓰럽기도 해서 나는 틈이 나면 친구네 집에 가서 집 정리를 해주기도 했고,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는 항상 에너지가 넘쳤던 친구의 얼굴에 무표정이 늘었다.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이들한테 화를 내고 나면 내가 괴물 같이 느껴져."
친구가 했던 말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아이가 말을 안 들으면 화를 낼 수도 있는 건데 저렇게까지 자괴감을 느낄 일인가 싶어서. 그땐 잘 몰랐다. 그게 어떤 감정인지.
어느 날, 그날도 친구네 집에 갔다. 일찍 퇴근하는 남편과 셋이서 저녁을 먹기로 한 터였다. 친구의 남편과도 결혼 전부터 친한 사이였다. 그런데 집에 들어온 친구 남편의 얼굴이 굳어졌다. 나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안방으로 들어가 버리더니 한참 뒤에야 나왔다. 무안하기도 하고 눈치도 보여서 저녁을 안 먹고 얼른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내가 눈치 없이 자주 갔나', '너무 늦게까지 있었나'. 그날 친구의 남편이 왜 그리 서늘하게 굴었는지를 두고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며칠 뒤에 친구와 통화하면서 알게 되었다. 깔끔쟁이 남편은 퇴근하고 돌아온 집이 엉망인 것을 보고 짜증이 났다고 했다. "아니, 아이 둘을 키우는데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춰서 청소까지 해놔야 하는 거야?" 내가 뭐라고 하자, 친구는 그 말이 싫었는지 입을 다물어 버렸다.
너는 결혼 안 해서 좋겠다는 말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친구들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솔직히 말해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들도 있었다. 만날 때마다 몸은 분명 나와 함께 있는데 영혼은 다른 데 있는 듯한 느낌. 맥락 없는 대화, 점점 잦아지는 불평들, 그리고 난데없이 튀어나오는 "너는 (결혼 안 해서) 좋겠다"는 말.
온통 관심이 아기에게 향하면서도, 그 존재에 매여 있는 스스로를 답답해 하는 친구들을 보며 나는 적절한 위로와 공감의 말을 떠올리지 못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영역이라 완전히 공감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잘 모르면서 함부로 이해한다고 말하기도 싫었기에 그냥 맞장구만 쳐 주었다.
게다가 그들에게 육아가 그랬듯, 나도 내 몫의 사회생활을 견디느라 힘든 시기였으므로. 점점 공통분모가 사라지고 공감할 수 있는 접점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레 연락이 뜸해졌다.
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넌 좋겠다, 편하잖아. 얼마나 자유로워. 돈 걱정 안 해도 되잖아"에서 시작된 부러움이 "넌 절대 결혼하지 마"로 이어지는 훈수의 횟수가 잦아지면서는 어쩐지 마음이 불편해진 탓도 있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멀어진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가.
비슷한 이유로 고등학교 동창인 A와도 의절할 뻔 했던 적이 있다. 늦게 결혼한 A는 좀 다를까 싶었는데, 내가 실연과 실직으로 힘들어할 때 A는 모든 결론을 "그러니까 혼자 사는 게 제일 편해. 넌 절대 결혼하지 마"로 내렸다.
그때 A는 잦은 부부싸움과 양육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던 터라 자신의 심리가 나를 통해 그런 방식으로 투사되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뒤돌아서서는 자기 아이가 예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쭉쭉 빨아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오만가지 생각이 들곤 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아이에 대한 애정과 별개로 A는 나의 마음까지 헤아리기엔 결혼생활이 팍팍했고,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노동에 지쳐 있던 시기였다. 또 나름 사회생활을 잘 하던 직장 여성이었는데 집에서 "그것밖에 못하냐"는 남편의 타박을 들으며 자존감에 균열이 일어난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친구의 사정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어쩐지 야속하고 서운했다. 우리는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놓았고, 다행히 '결혼'과 '출산'이라는 고비를 넘어 우정을 나누고 있다. 하지만 틈을 좁히지 못한 채 멀어진 친구들이 훨씬 더 많다.
솔직히 여성의 30대는 여러모로 분수령이 된다. 결혼한 친구와 아닌 친구들의 삶은 확연하게 갈렸다. 당연히 인간관계도 바뀌었다. 내가 처한 환경에 따라 관계의 지형이 바뀌는 건 당연한 이치. 그래도 지키지 못한 몇몇 친구들은 아쉬움이 느껴진다.
30대의 나는, 결혼과 양육으로 힘든 친구들의 변화를, 더 이상 주체적인 개인으로서 살 수 없는 좌절과 우울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이 막연하게 비혼의 삶을 자유로 봤던 것처럼 나도 그들의 '며느리, 아내, 엄마'라는 신분 변화에 따른 삶과 존재의 균열을 그저 결혼하면 거치는 '당연한' 진통 쯤으로 여겼다. 그렇게 불만이면 말하고 바꾸든가, 했지만 사실 그게 휴직계나 사표를 낼 때와는 차원이 다른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그땐 몰랐다.
'김지영'들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