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당번 시간에 함께 파우치를 만들었다.
꿈틀리인생학교
내가 살던 세상은 가혹했다. 경쟁해야 하고 눈치 봐야 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은 마음속에 쌓아 둬야 했다. 말이 많고 세상에 불만이 많던 나는 그것들을 표출할 곳이 필요했다.
하지만 마땅한 곳은 없었다. 힘들다고 말하면 그저 청소년기의 당연한 고통으로 치부됐고,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대학을 들먹이며 가로막았다. 그렇게 곪았다. 상처를 소독할 시간도 주지 않았으면서 말과 눈빛으로, 행동으로 또다시 상처 입혔다.
아픈 나날들의 연속이었지만 죽고 싶으면서도 살고 싶었다. 빛을 보고 싶었고, 나도 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세상에 증명하고 싶었다.
내가 틀린 게 아니라 그저 다른 것이라는 걸 전하고 싶었다. 망한 인생이나 틀린 인생이 아니라, 수만 가지의 길들 중 하나를 선택했을 뿐이라고 당당히 외치고 싶었다. 만들어진 체제와 규칙을 지키면서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삶이 무료했고, 이제 이 모든 것을 끝내자고 마음먹은 고등학교 1학년 말, 나는 꿈틀리를 알게 되었다.
세상을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놓을 용기가 없어 꿈틀리인생학교에 가는 것을 망설였다. 대학 진학에 대한 걱정과 새로운 사람들과 만남, 새로운 환경에서의 적응. 그것들은 나를 매료시키기도 했지만 동시에 불안함도 안겨줬다. 그래서 처음에는 안 가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기말고사와 수행평가를 동시에 준비하면서 내 몸과 마음은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꿈틀리인생학교에 가기로 마음먹은 건 기말고사를 시작하고 이틀 후였다. 시험기간 동안 중학교 생활 기록부를 떼고 원서 접수 마지막 날 자기소개서를 썼다. 대부분의 고등학교 친구들은 나를 응원해줬고 용기를 줬지만 몇몇은 대학은?, 진로는?, 농사? 그 힘든 걸 왜 굳이 돈 내고? 등의 마음에 와닿지 않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처음엔 그 말들이 나를 걱정하게 만들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내 인생에 지나치게 관심 많은 사람들이었구나'하고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울어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