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타고 동물을 사냥하는 사냥꾼 모습으로 크기는 손바닥만했다.
오문수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그림을 남겼을 선인을 향해 가볍게 목례를 한 후 임실문화원 최성미 원장에게서 배운 탁본을 시작했다. 그때였다. 근방에 아무도 살지 않는 것 같은데 카자흐족 소년 두 명이 다가와 탁본현장을 보다가 여기저기 널려있는 암각화 위치를 알려줬다.
바위 표면을 얕게 파낸 암각화는 단단한 돌을 깊이 파 그림을 새긴 사슴돌에 비해 탁본이 잘 안 됐다. 바람이 많이 불기도 했지만 시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암각화는 바위 표면의 한 부분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파내 이미지를 새긴 바위
대체로 바위에 새긴 암각에는 물감이나 안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암각화는 흔히 암벽이나 동굴 천정에 페인팅을 하는 암벽화와 혼동 된다. 암각화는 이따금 동굴이나 바위 은신처에서 발견되지만 보통 열린 공간이나 야외에서 발견된다. 반면에, 암벽화는 동굴 안이나 바위 은신처, 혹은 날씨에 영향받지 않을 높은 절벽에 있다. 이들은 석탄이나 숯, 컬러 염료나 동물 기름을 사용해 그림을 그린다.
이러한 인류의 표현 양식은 암각을 연구하는 학자뿐만 아니라 정치인, 역사학자, 종교학자, 인종학자들에게도 커다란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암각화는 말의 가축화와 말장신구에 관한 자료도 얻을 수 있다. 암각화는 수렵에서 농경문화로, 정착문화에서 유목생활로 변천되는 과정을 유추할 수도 있다.
또한 옛 선인들의 사냥 모습과 전차 장비, 고대 무기기술, 바퀴 달린 전차에 사용된 야금술을 짐작케 한다. 뿐만 아니라 샤머니즘이나 제사의식에 관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암각화 큰 것은 2미터쯤 되기도 하지만 적은 것은 손바닥만한 크기다.
탁본 뜨기에 열중하다 보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배고픈 줄도 몰랐다. 따뜻한 물만 부으면 되는 간편식을 먹다가 돌아보면 암각화가 있고 소변을 보러 가도 있었다. 천지가 암각화다. 주변을 둘러보니 제대로 된 나무 한 그루도 없고 듬성듬성 풀뿐이다. 멀리 두 세채의 카자흐스탄 유목민 집인 유르트만 보인다. 그렇다면 이곳은 4천년 전에 풀이 무성하게 우거져 동물들이 뛰놀던 곳 아닌가?
'알타이'란 말은 몽골어로 '황금'을 뜻하는 '알트(alt, altan)와 접미사 '타이( tai, ~ 와 함께)가 서로 결합한 것이다. 알타이라는 말은 국어학계에서 먼저 사용했다. 알타이에 살았던 선인들은 우리와 닮은 점이 많다. 한국어는 분명히 몽골어나 퉁구스어와 같은 문법구조를 지니고 있다. 만주와 몽골, 투르크어계의 언어도 넓게 보면 뿌리가 같다.
반면에 중국어와 한국어는 문자는 물론이고 문장구조, 음운체계 등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신라시대 천마총에서 발견된 천마도는 투르크시대에 그려진 말 형상과 같다. 갈기를 형상화한 천마도는 카자흐스탄이나 키르기스스탄, 몽골 등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필자는 몽골여행을 통해 내 뿌리가 몽골이라는 걸 알았다. 내 엉덩이에 있는 몽고반점은 지울 수 없는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