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처마에 걸린 들국화 묶음. 만수동마을의 고샅을 따라 건다가 만난 풍경이다.
이돈삼
만수동에는 구절초가 유난히 많이 피어 있다. 극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석간수(만수샘)가 있다고 이름 붙은 만수동은 한때 '들국화마을'로 불렸다. 고샅에 구절초 외에도 메리골드, 백일홍, 코스모스가 흐드러져 있다.
담 너머 집안 처마 주홍빛 단내를 머금은 곶감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마당에서는 강아지 두 마리가 다붓이 붙어 있다. 대청에 내걸린 들국화 묶음도 정갈하다.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솟는 것 같다. 한없이 정겨운 옛 고향집 풍경 그대로다.
만수동은 산간에 심어놓은 지황, 백지, 방풍, 황금, 당귀, 오가피 등 약초가 주된 소득원이다. 녹색농촌 체험마을, 자연생태 우수마을로 지정돼 있다. 마을사람들은 스스로 '한국의 알프스'에 산다고 자부하고 있다. 풍광에 반해 찾아오는 외지 여행객들도 많다.
만수마을회관 마당을 한 무리의 학생들이 차지하고 있다. 마당에선 꽃다발 만들기를, 실내에서는 차 체험을 하고 있다. 회관에서 가까운 밭에는 학생들이 고구마 캐기 체험을 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만수동은 무돌길(화순산림길)과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무돌길은 무등산의 허리춤을 따라 도는 둘레길이다. 모두 51.8㎞, 15개 코스로 나뉘어져 있다. 화순구간이 21㎞, 담양구간이 11㎞, 그리고 광주동구구간 10.8㎞, 광주북구구간 9㎞이다.
무돌길을 따라 물촌마을로 간다. 숲 사이로 지나는 길이 호젓하다. 하얀 손 흔드는 억새가 산골의 늦가을을 노래하고 있다. 가붓이 내딛는 발걸음마다 오래된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혼자서 뱅싯이 웃고, 때로는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길이 선사하는 감성이 마음속까지 다독여준다.
길은 물촌마을에서 오른편 국동리·서성리로 내려가는 길과 왼편 무등산편백휴양림을 거쳐 화순 이서로 넘어가는 길로 갈라진다.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서성리로 가면 아름다운 서성제와 만난다. 적벽에 버금가는 풍광을 자랑한다.
서성제 안에 작은 섬이 있고, 섬에 늙은 소나무와 어우러진 환산정(環山亭)이 자리하고 있다.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킨 백천 유함(1576-1661)이 인조의 항복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숨어 지내려고 지은 정자다. 나중에 저수지가 생기면서 물속의 섬으로 남았다. 저수지 안의 환산정으로 가는 길이 출렁다리 같다.
환산정 앞에서 몸을 비스듬히 눕힌 150살 된 소나무 고목도 이채롭다. 서성제의 맑은 물과 수변 풍경이 한데 어우러져 더욱 멋스럽다. 물위에 뿌리를 드러내놓고도 굳건히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버드나무도 각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