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서울 국방부에서 열린 제51차 한미안보협의회(SCM)에 앞서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 고위급 관료들이 한국을 대거 방문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국무부 4인방'으로 불리는 키이스 크라크 차관, 데이비드 스틸웰 차관보, 마크 내퍼 차관보, 제임스 드하트 방위비분담금 협상대표가 한꺼번에 입국했다.
이번 주에는 마크 애스퍼 국방장관, 마크 밀리 합동참모본부 의장, 필립 데이비슨 인도태평양사령관이 들어왔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까지 이들과 보조를 맞추면서 이른바 '국방부 4인방'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들이 입국한 목적은 14일에 열린 한미 군사위원회(MCM)와 오늘(15일) 열린 한미 안보협의회(SCM) 등의 무대를 통해 '방위비 분담금을 늘리고.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연장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다.
국무부 4인방과 국방부 4인방이 거론한 쟁점 중 하나인 지소미아는 외형상으로는 한국과 일본의 문제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미국과 일본과 한국의 문제다. 이익의 크기를 놓고 봤을 때 미국-일본-한국 순서가 된다.
지소미아 이익의 크기, 미국 〉 일본 〉 한국
미국이 앞장서서 지소미아 연장을 촉구하는 것은 동맹국 일본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미국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한마디로, 태평양의 패권이 예전처럼 동(東, 미국)에서 서(西, 아시아)로 계속 흐르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 기운이 서에서 동으로 '역주행'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886년에 인디언과의 전쟁을 끝내고 대륙을 단속한 미국은 1898년 태평양 진출을 개시했다. 미국은 이듬해까지 하와이·필리핀·괌·사모아·웨이크섬을 점령하면서 태평양 곳곳에 대한 지배권을 대략적으로 구축했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 패권 흐름이 서에서 동으로 바뀌는 듯했지만, 4년 뒤 일본의 패망으로 힘의 흐름은 다시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향했다. 1945년 이후로 동북아에서 미국이 소련·중국·북한과 냉전 상태를 유지하는 동안에도, 그 흐름은 같았다.
1898년 미국의 태평양 진출 이후 형성된 흐름을 타고 가장 큰 이익을 얻은 집단이 있다. 바로 미국의 기업자본들이다. 이들은 해외미군의 군사적 뒷받침을 받으며, 또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뒷받침을 받으며 동아시아에서 꾸준히 이익을 취했다.
'기업자본의 자율성 극대화, 국가권력의 공공성 극소화'를 표방하는 신자유주의가 1980년대 초반 사회당 출신인 프랑수아 미테랑 정권의 '귀여운 도전'을 제압한 뒤, 지구 북반부에서는 신자유주의가 대체로 공고하게 확립됐다. 이에 힘입어 미국 국가권력과 기업 자본은 태평양을 경유해 동아시아에서 지속적인 이익을 만들어냈다. 이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태평양의 패권은 계속해서 미국으로 향해야 했다.
그런데 태평양 점령을 개시한 지 정확히 110년 되는 2008년을 기점으로, 미국은 태평양 패권이 자신들에게 오지 않을 상황도 걱정하게 됐다. 1997년 한국 IMF 외환위기 이상의 충격을 줬던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바로 그 계기다. 미국 금융자본의 자율성 극대화가 낳은 대규모 파국인 2008년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가 퇴조하기 시작했다는 징후가 되는 동시에, 미국이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에 의한 세계 지배)의 쇠퇴를 절감하는 촉매제가 됐다.
중국의 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