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갈래머리를 한 이유

등록 2019.11.15 17:15수정 2019.11.1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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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의 양갈래머리
아내의 양갈래머리 이안수
 
서울에 살고 있는 아내가 내가 상주하고 있는 파주로 퇴근했습니다. 열흘만입니다.


눈에 익지 않은 아내의 모습이었습니다. 오랜만의 대면 때문인가 싶었는데 미소를 머금은 아내가 물었습니다.

"양갈래 머리가 어때요?"

그때야 그 낯선 모습이 양갈래로 묶은 헤어스타일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집정리를 마친 뒤 아내가 갈래머리를 한 이유가 궁금하지 않냐며 목욕탕에 간 얘기를 꺼냈습니다.

"동네사람에게 오래된 목욕탕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지난 토요일에 그곳엘 갔어요. 걸어서도 갈만한 거리였어요."


"쌍문동에는 아직 목욕탕이 있단 말이오?"

나는 집에 샤워시설이 없던 시절 출입하던 높은 굴뚝의 옛 목욕탕을 상상했습니다.


"3층짜리였는데... 간판은 목욕탕이 아니라 사우나라고 붙었던 것 같네요. 1층에 남탕, 2층에 여탕, 3층에 찜질방으로 된 꽤 큰 곳이었어요."

뭉친 근육을 풀기에는 역시 목욕탕만 한 곳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곳에서 두 분의 할머님을 뵈었어요. 제 옆에서 때를 밀고 계신 할머님이 계셨는데 어찌나 야무지게 밀든지... 연세를 물어봤어요. '맞춰봐!' 하시길래 '여든이요' 했더니 아흔셋이라고... 평소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아들이 태워다 주는데 참을 수가 없어서 혼자 오셨데요.

'참 정정하시다'고 칭찬을 드렸더니 저희 뒤쪽의 할머니를 가리키면서 '저분은 100세야. 월요일마다 오시는데 오늘 오셨군. 나는 다리가 좀 안 좋고 저분은 귀가 잘 안 들려'라고 하시더라고요. 100세 어르신은 한 아주머니께서 씻어드리더라고요. 딸인지 며느린지는 여쭈어보진 않았지만..."
 
 아내의 여고시절 갈래머리
아내의 여고시절 갈래머리 이안수
 
갈래머리 얘기가 언제 나올지에 주목하다가 참지 못하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목욕탕과 갈래머리는 무슨 상관이오?"

"100세 할머니와 내 나이의 차이를 꼽아보니 41년이었고 현재의 내 나이에서 41년을 뒤로 돌리니 18세 때였어요. 그동안 나는 내년 은퇴만을 생각하며 마치 인생 정리하는 분위기로 살았는데 그 할머니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아직 여고생이더라고요. 그래서 오늘은 이 갈래머리로 출근했어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모티프원의 블로그(www.travelog.co.kr)에도 실립니다.
#여고생 #갈래머리 #목욕탕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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