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산의 단풍나무는 한국 자생의 단풍나무 중 당단풍과 좁은단풍·털참단풍·고로쇠·왕고로쇠·신나무· 복자기 등 11종, 저마다의 빛깔로 깊어가는 가을을 드러낸다.
장호철
가을이 '단풍의 계절'이라는 걸 모르는 이야 없지만 단풍을 제대로 즐기기는 쉽지 않다. 굳이 단풍을 보겠다고 길을 떠나도 때를 맞추기가 여간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대체로 그 걸음은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기 일쑤다. 한 열흘쯤 늦추거나 당기면 맞아떨어지겠지만, 그게 말처럼 수월치 않은 것이다.
가을과 단풍의 본좌
그간 단풍 이야기를 두어 차례 기사로 썼다. 구미 태조산 도리사(
그 산사의 단풍, 이미 마음속에 불타고 있었네)와 대구 팔공산 단풍길의 단풍(
그 숲길, '순정'의 단풍을 잊지 못하리)이다. 도리사 단풍은 핏빛이라는 기억을 돌이키려 두어 차례, 팔공산 단풍길은 꽤 여러 해에 걸쳐 찾았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불만족스러웠던 것일까. 나는 온 산 전체가 불타는 단풍을 보고 싶었다. 봄철 진달래 불길처럼 능선을 타오르는 고운 단풍과 더불어 산을 오르고 싶었다. 정비석이 <산정무한>에서 그린 것처럼 "만산의 색소는 홍(紅)!"이라고 경탄한 그런 단풍 말이다.
누구는 설악산 주전골을 이야기하고, 누구는 지리산 피아골을 꼽지만, 나는 '내장산 단풍'을 오래 마음속에 품어 왔다. 내장산 단풍의 명성을 의심 없이 좇는 것은, 물론 거기가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기 때문이다. 가보지 못한 곳의 명성을 논할 수 없는 탓이기도 하다.
단풍철이 되면 내장산을 되뇌며 보낸 세월이 10년도 넘었다. 주말은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미어터진다는 게 정설이어서 언젠가 평일을 잡아 떠나겠다고 마음먹고도 또 몇 해가 흘렀다. 올 10월 말에 피아골에 가서 단풍을 구경하긴 했으나, 아직 철이 일러 아쉽게 발길을 돌리는데, 묘하게도 자꾸 내장산이 밟히는 것이었다.
미루기만 하다가 나이 들어 돌아다닐 기운마저 빠지면 헛일이라는 주변의 얘기에 정신이 번쩍 났다. 맞다, 까짓것 못 갈 일이 어디 있는가. 새벽 일찍 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면 되지, 뭐. 기상청 단풍 정보를 참고하여 출발 날짜를 11월 11일로 잡았다. 단풍 인파가 절정에 이르렀을 주말 바로 다음 월요일을 선택한 것은 내가 숱하게 들어온 내장산 '관광의 실패'를 피해 가기 위해서였다.
내장산에 간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모두 비관적이었다. 내장산을 다녀온 사람들의 충고는 하나같았다. "평일이라고 주말과 다르진 않을 걸? 발 디딜 틈도 없는데 주차장에 차 대는 건 언감생심이지"에서부터 "떠밀려 다녀야 하니 산 아래 식당에서 밥 사 먹는 것도 전쟁이야. 아예, 도시락을 준비해 가라"까지 단풍 구경에 치러야 할 난관을 줄줄이 읊어댔다.
11일 오전 6시 아내와 함께 출발하면서 내비게이션에 내장산 국립공원을 입력하자 231Km 거리에 2시간 48분이 걸린다고 떴다. 여산휴게소에 들러 간단한 식사를 하고 나서 나는 공원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주차장에 들어갈 수 없다면, 아예 정읍 시내에 주차하고 시내버스를 이용해도 좋다는 생각이었는데, 직원은 제1주차장에 차를 댈 수 있을 거라고 말해 주었다.
용기백배, 쉬지 않고 달려서 제2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10시를 막 지나고 있었다. 제1주차장은 만차여서 나는 차들이 막 들어오기 시작한 제2주차장에 차를 댔다. 우리는 첫 관문을 무사히 통과한 것이다. 거기서 매표소까지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내장사까지 2.3km를 유료 순환 버스를 타는 대신 우리는 걷기로 했다.
전라북도 정읍시와 순창군 경계에 있는 내장산(內藏山)은 호남 지방의 5대 명산 중 하나로 1971년에 인근 백양사 지구와 함께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산 이름이 '감출 장' 자를 쓴 '내장(內藏)'이 된 것은 산속에 숨겨진 것이 무궁무진하다고 해서다.
산홍, 수홍, 인홍... 내장산의 단풍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