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잡힌 식단, 운동할 수 있는 시간 등 건강에 영향을 주는 요소 중 많은 것들이 사회적으로 불평등하게 존재하고 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그렇다면, 보다 구체적인 수준에서 건강 불평등 문제의 원인을 살펴보자. 우선적으로 건강을 유지하려면, 충분한 먹을거리와 의복 그리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이 필수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일정한 수준의 물질적 자원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소득 불평등은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자원의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다.
식습관, 흡연, 음주, 운동과 신체 활동 등의 생활습관 역시 건강 유지에 중요하다. 이는 동료집단의 문화에 영향을 받으며, 사회에서의 지위에 따라서도 생활습관이 다르다. 문제는 생활습관이 개인의 선택인 것처럼 비춰지지만, 사실은 개인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른 선택이 아닌 강제된 상황에서의 비자발적 선택이라는 점이다.
각자가 처한 노동환경, 노동조건, 작업장 문화 등에 따라 건강에 유해한 생활습관을 갖게 된다. 교대제, 장시간 노동, 야간노동, 휴게시설 및 휴게시간 부족, 연차 사용 제한, 건강검진 미보장 등이 노동자 개인이 자신의 건강관리 습관을 형성하는 데 미치는 영향을 무시해선 안 된다.
보다 자세히 말해, 건강 불평등은 단순히 국가 간, 지역 간에만 나타나는 문제가 아니다. 소득과 학력 등의 사회적 지표와 건강 수준의 지표 간의 연관을 고려할 때, 우리는 노동자의 건강 불평등에 대해서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노동자의 건강 불평등과 가장 관련성이 높은 요인은 바로 노동조건과 노동환경이다.
사람들은 노동 시장에 참여함으로써 소득을 얻고 자아 정체성을 형성한다. 사회에 만연한 소득 불평등은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자원 배분의 불평등을 야기하는데, 여기서 핵심은 생활 임금 이하의 저임금 문제다. 저임금·불안정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건강을 유지 및 관리할 수 있는 자원의 부족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안전하지 않은 작업환경에 따라 사업장 간 건강 불평등도 심각하다. 어떤 사업장들에선 안전설비와 보호장비가 잘 마련되어 있고, 안전점검과 보건관리가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데 반해, 다른 사업장들의 경우엔 기계설비에 압착되거나 높은 곳에서 추락하거나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되는 등의 각종 사고위험이 상존하며 뇌심혈관계질환이나 근골격계질환 등 각종 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고 이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이러한 사업장 안전보건 수준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의 사업장 규모별 또는 직종별·산업별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이런 상황에 대한 조사가 통계나 자료로 자세히 정리되어 있지는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노동자들이 겪는 노동안전보건 상의 문제를 건강 불평등의 차원에서 재규정할 수 있다. 이런 접근의 연장선에서 사회적 지위에 따라 느끼는 직무 스트레스의 정도와 같은 사회 심리적 문제 역시 건강 불평등과 관련되어 있다.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의 노동자들은 직무에 대한 낮은 통제력을 느낄 가능성이 크고, 노력에 비해 보상이 부족할 수 있다고 느낄 가능성 역시 크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이 같은 건강 불평등이 발생하는 기저의 원인은 사회적 불평등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사회적 불평등을 "원인의 원인"이라고 한다.
건강한 삶, 차별 없이 누려야 할 모두의 권리
현재 단편적인 뉴스로만 보도되고 있지만 산재사망을 비롯한 중대한 산업재해는 소규모 영세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서 빈발하고 있다. 이는 일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 권한과 자원이 부족한 불안정·비정규직·하청 노동자들에게 떠넘겨 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우리는 이를 '위험의 외주화'라고 정의하여 문제제기하고 있다.
노동자의 건강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환경과 노동조건을 개선해야 한다. 대표적인 예로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씨 산재 사망사건은 정의롭지 않은 사회적 환경에서 발생한 것, 이른바 사회적인 타살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빈발한 중대재해, 각종 산재사망사고는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하는 요소들이 고착화되어 노동자의 사망으로까지 이어지게 되는 건강 불평등의 고리들을 파악할 수 있게 해주며, 이러한 부정의한 상황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불평등의 근본원인이 무엇인지 밝혀내고 그것들을 개혁해나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건강은 누구나 다 누려야할 가치이며 권리다. 하지만 사회적 불평등에 의해서 누구나 그 같은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재차 강조하자면, 건강할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사회적 불평등을 줄여야한다. 노동자간의 임금 격차를 줄여하고 그러기 위해선 최저임금이 생활의 최저선이 아닌 건강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다양한 자원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일터를 바꿔 나갈 수 있는 노동자의 기본적인 노동안전보건 권리인 알 권리, 참여할 권리, 거부할 권리를 적극 보장하는 것 역시 노동자들의 건강 불평등을 줄여 나가는데 중요한 열쇠다.
또 안전과 관련해서는 누구나 다 안전하고 건강에 해롭지 않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비정규직, 소규모 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여성, 이주, 청소년, 고령, 장애, 성소수자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로 불리는 이들 역시 배제 되거나 차별 당하지 않고 충분히 안전한 노동환경을 보장받아야 한다.
물론 건강 불평등은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지만, 앞으로도 이를 줄이기 위한 지속적인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유럽에선 이미 각종 법제도를 마련하고 이를 제대로 작동시켜 노동자의 건강 불평등을 오래전부터 충분히 줄여왔다는 점이다. 우리도 사회적으로 관심을 갖고서 안전보건체계를 제대로 구축하고 및 실효성 있게 집행한다면 노동자의 건강불평등을 해소해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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