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논리 복사판
박성모
책에 대해 애착이 없는 사람들은 '그깟 복사가 뭐가 대수냐'라고 말할 수 있지만, 책을 보물처럼 아끼는 사람에게 '복사'는 국보급 도자기를 밥그릇으로 쓰면 안 되느냐고 부탁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책 한 권을 복사하자면 원본이 상할 수밖에 없다. 먼지마저도 조심스럽게 닦아내는 애서가에게 복사는 청천벽력이나 다름없다. 더욱이 강길운 선생은 거의 결벽증 수준으로 책을 소중히 보관하는 애서가였다.
제자의 당돌한 부탁에 어지간히 당황했을 강길운 선생은 태연하게 "자네들이 뭐 알기나 하겠나. 임화에 대해서"라며 선뜻 <문학의 논리>를 내주었다. 금지된 보물을 품에 안은 박성모 사장과 한 친구는 복사집에 달려갔다.
복사집 주인에게 아픈 자식을 의사에게 부탁하듯이 원본이 상하지 않고, 정성을 다해서 복사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과연 튼튼하고 아름다운 제본으로 이 세상에 단 2권밖에 없는 <문학의 논리>가 탄생했다.
책 사이즈도 두툼하고 큰 원본에 비해 여백을 잘라내고 아담하게 제작했다. 그야말로 참 예쁜 책이 되었다. 원본은 상당히 훼손되었다. 책보다 제자를 사랑하셨던 강길운 선생은 아무런 말이 없이 원본을 받아들었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결국 한국문학 전문 출판사를 운영하게 된 박성모 사장은 당연히 <문학의 논리> 원본을 구했지만, 대학 시절 복사집에서 만든 복사본에 더 애착을 가졌고 그의 애정서 1호 자리는 원본이 아니고 복사본이 차지한다.
임화문학예술전집
스승의 원본을 훼손해가면서 정성스럽게 만든 복사판 <문학의 논리>를 정성스럽게 읽은 박성모 사장은 '임화문학전집'을 내기 위해서 출판사를 차리기에 이른다. 임화가 소명출판의 뿌리라고 한다면, <문학의 논리>가 포함된 임화문학전집은 소명출판이 후원하는 임화문학예술상의 뿌리다.
임화는 1930년대 새롭게 태동한 문학 경향에 반대하며 사실주의 문학을 옹호하는 평론으로 일약 조선을 대표하는 평론가로 등극하였는데 당시의 평론을 엮은 유일한 평론집이 바로 <문학의 논리>다. 당시 약 7년 동안 다양한 매체에서 발표한 평론 가운데 임화 자신이 직접 고르고 고른 대표작을 선별했다는 점에서 가치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