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
저는 제주에서 나고 자라 천주교 신자로서 살아가는 제주도민입니다. 표선에서 우도로 또 화순으로 이곳저곳 작은 마을들을 돌아다녔습니다. 농사일도 부지런히 하고 시간 나면 바다에도 들어가 먹을 것도 따고, 마을 사람들 만나 이야기 하다 보면 하루 하루가 보람있게 지나갔습니다. 생명을 키우고, 생명을 만나는 것이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라 생각하며 정말 열심히 살아 왔습니다.
그러다가 강정에 오고 난 뒤에는 밭에 있는 시간보다 도로에서 경찰들이랑, 해군기지 지키는 용역 경비들이랑 씨름하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밭으로, 바다로 가고 싶고 고사리도 따러 가고 싶은데 그야말로 시절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울부짖는 사람들을 두고 어떻게 그것을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공소(천주교에서 본당보다 작은 교회 단위) 회장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지만 후 세대에, 먼저 가신 4.3영령들께 부끄럽지 않기 위해 열심히 했습니다.
아침 7시면 강정에서는 매일 생명평화를 기원하는 100배를 합니다. 지금은 해군기지 앞에서 하는데 싸늘한 눈빛이 느껴집니다. 기도를 하는 등 뒤로 해군들과 일하러 들어가는 사람이 보내는 차가운 눈빛. 그래도 해군기지에 꽉 막혀 숨도 못 쉬는 구럼비를 생각하며 힘을 냅니다.
그러고서 밭일 잠깐 하면 금방 11시, 거리 미사를 준비할 시간이 됩니다. 바쁘게 밭에서 미사 천막으로 가 매일 미사를 올립니다. 그러고서 강정의 활동가들과 함께 12시에 인간띠잇기 행사를 합니다. 점심을 먹고서야 온전히 밭에 가 일하거나 바다에 가거나 하는 시간이 생기는 것입니다.
바다가 말라가고 있습니다, 바다가
8일은 해군기지 반대싸움이 4658일째 된 날이었습니다. 제가 2012년 강정에 왔을 때만 해도 짬을 내 숨을 쉬러 바다에 나가면 바닷것들이 살아 있어 우미(우뭇가사리)도 양파 자루에 담아올 수 있고 운 좋으면 성게도 잡아와서 나눠먹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공사 시작하고 해군기지가 완공되고 난 뒤에는 개체수가 줄어드는 건 물론이고 바다에 해초가 없습니다. 바다가 말라가고 있습니다. 바다가.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것처럼 작은 것은 잡지 않아도 다른 것들 얼마든지 잡을 것이 있었고, 4계절 종류별로 해초들이 나와 국을 만들어 먹을 수 있었습니다. 물때에 맞는 생물들이 다 살아 있었습니다. 바글바글.
그런데 지금은 사계절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바다가 되어버렸습니다. 바글바글했던 생명이 없고 먼 바닷가 끝까지 가도 해초가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저는 이런 변화가 정말 무섭습니다. 아마 초기에 해군기지 찬성했던 강정의 해녀들도 지금의 텅 빈 바다를 보면 '아이고 우리가 무슨 짓을 해신고' 겁나고 무섭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소라 씨앗을 던지고 전복 씨앗을 던지면 그게 다음해 되면 자라는 걸 보는데 지금은 껍데기만 덩그러니 남아 있으니 이것이 재앙이 아니고 무엇일까요. 평생 바다에 의지해 온 사람들이 어디 가서 살겠습니까.
돈에만 급급... 깨져버린 마을 공동체
이것은 생명과 관계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어지는 과정에서 생명이 파괴되고 모든 것이 황폐화 됩니다. 생명을 돈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강정의 현재 마을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에 대한 건강한 비전이 있는 게 아니라 주어진 돈이니까 그냥 받자고 합니다. 그러면서 '후손을 위한 것이다'라고 합니다만 제가 보기엔 내 앞에 있는 돈을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마을 공동체가 깨지면서 '공동체 회복 사업'이란 명목으로 받은 돈을 나누지 않기 위해 감옥 가고 벌금 낸 이주민들의 주민권을 박탈하고 배척합니다.
바다는 다 죽고 공동체는 다 깨지고 주민은 주인 의식 없이 돈에만 급급하고 혈안 되어 돈의 노예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인간이 하지 말아야 할 큰 실수입니다. 너무나 가슴 아픈 일입니다. 돈에 의해 생명이 깨지고 인간이 황폐해지는 강정의 현실을 보고 저는 이런 일이 더 이상 생겨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제주 제2공항을 막는 일에 나서게 됐습니다.
제2공항은 제2의 강정, 절박한 마음으로 싸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