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을 시골에서 쓰면서 'ㅅ'으로 여는 낱말을 새삼스레 즐깁니다만, 예전에는 'ㅅ'으로 여는 말을 썩 안 좋아했습니다.
최종규/숲노래
[표준국어대사전]
어린이문학 : 1. [문학] 어린이를 대상으로 그들의 교육과 정서를 위하여 창작한 문학. 동요, 동시, 동화, 아동극 따위이다 2. [문학] 어린이가 지은 문학 작품
그림책 : 1. 그림을 모아 놓은 책 2. 어린이를 위하여 주로 그림으로 꾸민 책 3. 그림본으로 쓰는 책 4. '화투'를 속되게 이르는 말
동시 : 1. [문학] 주로 어린이를 독자로 예상하고 어린이의 정서를 읊은 시 2. [문학] 어린이가 지은 시
푸름이 여러분은 동시나 동화를 요즈음 읽는가요? 이제는 안 읽고 소설과 어른시만 읽나요? 어때요? 동시나 동화 같은 어린이문학은, 또 그림책은 푸름이 나이에는 멀리하거나 안 읽을 이야기나 책일까요? 어린이만 읽어야 하는 어린이문학이거나 그림책일까요?
사전 뜻풀이를 보면 어린이문학이든 그림책이든 동시이든 다 '어린이만 보는' 틀로 담습니다. 자, 이 뜻풀이를 그러려니 하고 지나칠 수 있습니다만, 무척 많은 분들이 이 뜻풀이가 알맞지 않다고 여겨요.
그런데 무척 많은 분들이 이 뜻풀이가 알맞지 않다고 여겨도 정작 국립국어원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는 이런 뜻풀이를 바로잡거나 손질하거나 고치려고 하지 않아요. 왜 그럴까요?
아무래도 적잖은 어른들이 어린이문학을 안 읽거나 그림책을 안 들여다보는 탓일 수 있어요. 푸름이 여러분 같은 딸아들을 낳아서 돌보는 어버이 자리에 서서 어린이문학이나 그림책을 가까이한 어른이라면 흔히 이렇게 말한답니다. "와! 이렇게 아름답고 재미난 책이 어린이문학이었네? 어쩜 이렇게 눈물겹고 웃음나며 사랑스러운 그림책이 다 있을까? 그야말로 쉽고 재미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동화이고 그림책이네!" 이리하여 '동화읽는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모임이 있답니다. 동화나 동시나 그림책은 '어린이부터 누구나 누리고 즐기고 나누면서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사랑을 배운다'는 마음을 주고받으려고 해요.
[숲노래 사전]
아동문학 → 어린이문학
어린이문학 : 삶을 사랑하는 슬기롭고 상냥한 이야기를 어린이 눈높이로 담아서 누구나 읽고 누리고 나누고 즐길 수 있는 글. 어른이 쓰기도 하고 어린이가 쓰기도 한다. 어린이문학은 어린이만 읽는 글이 아닌 어린이부터 다같이 읽고 누리며 나누는 글이다
그림책 : 1. 그림을 모으거나 엮거나 담은 책 2. 삶을 사랑하는 슬기롭고 상냥한 이야기를 그림을 바탕으로 엮은 책. 그림을 바탕으로 줄거리를 엮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 아기나 어린이도 쉽게 알아보거나 느끼도록 엮기 마련이고, 아기나 어린이부터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책
동시 (= 노래꽃)
: 삶을 사랑하는 슬기롭고 상냥한 노래. 어린이 스스로 쓰는 동시가 있고, 어른이 써서 어린이하고 함께 읽는 동시가 있다. 동시는 누가 쓰든 어린이부터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시인데, 시란 우리가 나누는 말을 마치 노래처럼 누리는 글이기에, 따로 '노래꽃'이라 해볼 수 있다. 동시도 시도 '노래꽃'이라 할 만하다
제가 쓰는 사전은 이렇게 '어린이문학·그림책·동시' 같은 낱말을 아주 새롭게, 또 오늘날 흐름이나 결에 맞추어서 풀이하려고 합니다. 푸름이 여러분을 만나는 이 자리뿐 아니라 여느 어른을 마주하는 자리에서도 이런 새 뜻풀이를 이야기하지요.
거듭 말씀을 하겠습니다만, 저는 뜻풀이를 붙이면서 어렵다고 느낀 적이 없어요. 다만 여느 사전이 여태까지 무척 엉성하거나 한켠으로 기울어진 뜻풀이를 참으로 많이 했다고 느껴요. 저로서는 이런 엉성한 여느 사전 뜻풀이나 한켠으로 기울어진 뜻풀이를 가다듬거나 확 뜯어고쳐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이 즐겁고 새로운 빛이 될 뜻풀이하고 보기글을 즐겁게 붙이자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이렇게도 이야기할 만해요. 제가 어느 낱말 하나에 뜻을 제대로 붙일 수 있다면, 이리하여 제대로 붙인 뜻풀이를 찬찬히 읽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우리는 어느 낱말 하나를 제대로 알아차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삶과 살림과 사람과 사랑을 모두 새롭게 바라보면서 스스로 씩씩하게 일어서는 힘을 찾아내거나 키울 수 있답니다.
그나저나 푸름이 여러분이 궁금해 하는 대목은 이런 얘기가 아닐 수 있을 텐데요, 제가 말풀이를 달기 어려웠던 낱말을 굳이 꼽아 보라면 '생각'이라든지 '사랑'이라든지 '하다'라든지 '있다'처럼, 아주 쉽고 흔한 낱말이에요. '보다'나 '주다'나 '가다' 같은 낱말도 섣불리 뜻풀이를 마무리하기 어려워요. 그런데 저로서는 어렵지는 않았고 좀 품이 들었을 뿐이에요. 이를테면 '생각'이나 '사랑' 같은 낱말은 뜻풀이를 붙여서 마무리하기까지 적어도 여섯 달이 걸렸어요. 여섯 달을 써서 낱말 하나를 풀이했답니다. '보다'나 '주다'는 석 달쯤 걸렸고요.
이렇게 말해도 되겠는데요, 우리가 '흔히 어렵다고 여기는 낱말'은 오히려 뜻풀이가 쉽습니다. 우리가 '으레 쉽다고 여겨서 사전을 거의 안 찾아보는 낱말'이 도리어 뜻풀이가 어렵다고 할 수 있어요. 이 대목이 참 재미있어요. 생각해 봐요. 푸름이 여러분이 한국말사전에서 '있다·보다·주다'나 '생각' 같은 낱말을 찾아보나요? '시골' 같은 낱말도 그렇고요. 그런데 오히려 이런 낱말, 사람들이 사전에서 잘 안 찾아볼 듯한 낱말이야말로 뜻풀이를 제대로 붙이기까지 훨씬 긴 나날에 오랜 품을 들여야 한답니다. 전문용어 같은 낱말은 뜻풀이가 대단히 쉬워요. 삶말이나 살림말은 뜻풀이에 오래오래 마음을 써야 하고요.
'시골'이란 이름을 놓고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데요, 제가 시골을 풀이할 적에는, 시골은 '숲'하고 '살림'이 어우러져야 한다고 느꼈고, 둘 가운데 어느 한 가지만 있으면 안 어울리겠다고 여겼어요. 둘이 같이 있어야 되고 둘을 사람이 만지지요. 사람이 숲하고 살림 사이에서 둘을 만지는 셈이에요. 이러면서 숲하고 살림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슬기로울 수 있어야겠지요. 사람이 있되 그냥 아무 사람이나 있어야 하지 않는다고 할까요. 슬기로운 사람이 있어야겠지요. 그런데 '슬기롭다'고 하는 이 말은 '똑똑하다'하고도 이어지거든요. 머리가 좋기만 해서는 슬기롭거나 똑똑하지 않아요. 머리가 좋기만 하면 '꾀부리는' 길로 빠질 수 있답니다. '꿍꿍이'를 꾸밀 수 있고요. 그러니까 "사람이 슬기롭게 살림을 살펴서 새롭게 살아가는 숲이 사랑스러워서 시골"이라고 할 수 있다고 느껴요. 집이 숲이 되고, 숲이 집이 되는 터전이 시골이라고 해도 좋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