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지하철
pixabay
수준 높은 시민의식 모범 답안지는 어떻게 생겼을까. "개념 없는 사람"이란 말이 우리의 입에 딱 달라 붙은지 오래다. 얼마 전 '컵라면녀'로 논란을 붉힌 대중교통 음식물 반입 사항에 대해 강제조항, 심지어 벌금을 부과하자는 주장이 강세를 보이고있다.
참 이상하다. 매일 쏟아져 나오는 수백 건의 뉴스 중에서 지하철에서 컵라면 먹는 사람 목격담이 베스트 기사에 오른다는게 결코 정상적 사회의 일면으로 보여지지 않는다. 민폐를 끼치는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이런 일에 갈고랑이를 걸어 옴짝달싹 못하도록 전국적 생매장을 시켜버리려는 현상이 이상하다. 모 뉴스업체에서 "지하철 컵라면녀 누구?"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채택하는 것도 그렇다.
'승객들 사이에서 시비가 붙어서 경찰서라도 갔나?'라고 나름 추측하며 기사를 클릭했다. 얼굴이 가려진 사람 한 명이 출입문 가까이 측면으로 서서 컵라면을 먹고있는 사진과 간단한 목격담이 소개되었다. 그 외 해프닝은 별 다른게 없었다. 다른 승객과 싸웠다는 내용도, 컵라면 용기를 버리고 도망갔다는 내용도 없었다. 포털사이트 N사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기에 여차하여 다른 사이트에도 접속해 보았다.역시 실시간 1,2위를 달리고 있었다.
천 개 이상 달린 댓글들은 찬반 토론이랄 것도 없다. 모두가 비슷한 의견이었다. 정신 나갔다, 꼴불견이다, 저건 잘못 되었다고 비난하고 지적하는 것도 표현의 자유다. 허나 그 사진 한장을 말미삼아 모든 것을 지레 판단하는 의견이 주류였다. '분명히 중국인이다', '맘충', '인성쓰레기', '아줌마들은 다 저렇다', '평소에 어떻게 행동하고 다닐지 안봐도 뻔하다'와 같은 밑도 끝도 없는 인신 공격이었다. 이런 댓글들에 반대 의견을 제시하려면 같이 매장을 당할 각오부터 해야한다. 너도 저렇게 해봤으니까 저 인간을 대변하는구나, 라는 소리를 듣게된다.
사회에서 아직 대다수의 의견이 확립되지 않은 일의 허와 실을 찾는 것은 크레딧을 줄만하다. 하지만 표면적인 잘못(에티켓 어김)이 완연히 드러났을때 힐난을 보태는 것보다 쉬운 일은 없다. 여론에 몸을 맡기고 그 흐름을 따라가기만 하면된다. 이미 정해진 도덕적 척도로 '도 아니면 모'로 판단하기만 하면된다. 뒤집어 말하자면, 해당인물에게는 이미 잘못이란 딱지가 씌워져있기 때문에 당신의 비난은 하나마나 차이가 없게된다.
대중교통 음식 반입 및 섭취는 꾸준히 논란이 되었다. 올 초, 퇴근시간 지하철 내 아이에게 피자를 먹이는 여성이 화제였다. 작년에도 저작년에도 비슷한 일들을 인터넷에서 반본적으로 보았다. 이런 류의 기사들은 오로지 소수의 목격담에 의해서만 기사화 된다는 것이 문제다. 스토리가 있는 사건 사고도 아니기에 조사도 힘든다.
소위 "진상포착"은 우리 사회에서 유행처럼 번졌다. 조금이라도 비매너 (혹은 비매너라고 고려되는) 행동을 보면 사진촬영부터 한다. 인터넷 각종 커뮤니티에는 고발 글들이 수 없이 많다. 몇 년 전, 등산복을 입은 한국 중년 여행객들이 외국의 공항 구석에서 자리를 깔고 옹기종기 음식을 먹는 고발글이 사진과 함께 올라왔다. 10대 때부터 서구권에서 근 10년 생활을 한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관광객들말고 그 고발자의 행동말이다.
2018년 초에 도입된 서울 시내버스 음식물 반입금지 세부 규정은 권유차원이다. 반입 허용과 금지의 예시가 자세히 나와있다. 궁극적으로 이는 운전기사들의 재량이다. 하지만 언론과 여론은 아직 이것도 만족스럽지 못한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