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화 톨게이트지부장
참여사회
'불법점거' 이전에 '불법파견'이 있었다
- 다리는 어쩌다가 다쳤나.
"캐노피에 올라가서 한 달 정도 됐을 때 다쳤다. 다치는 순간 되게 아팠는데 바로 내려보낼까 봐 말도 제대로 못 했다. 청년의사회 소속 한의사 선생님이 올라오셨을 때 말하니까 침을 놔주시더라. 근데도 부기가 계속 안 빠져 혼자 나무 막대기 같은 거 주워다가 발가락에 대고 테이프로 감아 놨다. 조합원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지지 방문을 왔었는데 절뚝거리면 걱정할 거 같아서 한동안은 아예 안 걸어 다녔다. 캐노피에서 내려온 뒤 응급실 가서 사진을 찍어보니 뼈가 부러졌다고 하더라. '그동안 아픈데 어떻게 참았냐'고. 나도 내가 곰인가 싶었다. (웃음)"
- 언제부터 톨게이트 요금수납원으로 일했나.
"2004년부터 충남 서산 톨게이트 영업소에서 일했다. 제가 처음 들어갈 때 서산이 신설영업소였다. 도로공사 정직원인 줄 알고 들어갔는데 (영업소) 사장 따로 있고, 도로공사 소장이 따로 있더라. 이게 말로만 듣던 '외주업체'구나 싶었다. 예전엔 톨게이트 영업소가 전부 도로공사 직영이었다. 그러다가 95년도에 고속도로 분기점이 많이 만들어지면서 신설영업소에 한해서 외주화가 시작됐다. IMF 터지면서 기존 영업소들도 차츰 외주화가 됐고 이명박 정부 때 선진화 정책 나오면서 전면 외주화로 갔다."
- 수납 업무에는 주로 어떤 분들이 주로 종사하는지.
"기혼 여성, 중년 여성이 많다. 남자들도 있긴 한데 대부분 장애를 가진 분들이다. 어떤 영업소는 일부러 전 직원 장애인을 고용한다. 장애인 장려금 받으려고. 그런데 수당이 3년만 지급되니까 3년 되면 해고한다."
- 임금 수준이나 근무환경은 어떤 편인가.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이다. 무엇보다 해고가 너무 쉽다. '너 내일부터 나오지 마' 그러면 그냥 해고다. 오늘 갑자기 문자로 통보받고 내일부터 안 나오는 언니들도 봤다. 그런 걸 옆에서 계속 보니까 부당한 일이 있어도 제대로 말도 못 한다. 나도 언제 잘릴지 모르니까. 2007년에 하이패스를 전면 시행하면서부터는 매년 300명씩 해고했다. 하이패스 때문에 수납업무가 줄었으니까 인원 감축하라고 도로공사가 공문 한 장 보내면 외주업체 사장이 그냥 잘라내는 식이다. 이런 걸 지켜봤던 사람들이라 '자회사'라는 또 다른 용역회사는 갈 수 없다는 거다."
-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용역업체 사장들이 무슨 권리로?
"대부분 도로공사 퇴직자들이다. 조기퇴직하고 남은 기간을 영업소 운영권으로 보장해주는 식이다. 수의계약을 해서 오는 사장들이 도로공사 있을 땐 다들 진짜 좋은 사람이었다고 얘기한다. 근데 영업소로 오면 악덕사장이 된다. 무슨 매뉴얼이라도 있나 싶었는데 실제로 매뉴얼이 존재하더라. '운영자협의회'에 영업소 운영을 이렇게 해야 이익이 많이 남는다는 매뉴얼 같은 게 있다. 사장은 감축 인원만큼 용역 기간을 보장받는다."
- 직접고용 되면 이런 게 사라질 거라고 기대하는 건가.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을 거다. 이번 6월에 대량해고가 예고되면서 자회사 전환이 한 번에 이뤄진 게 아니고 한 달간 시범운영을 했었다. 그때 해고 대상자들을 모아놓고 '이제는 말한다' 증언대회를 열었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가관이었다. 성희롱이나 갑질이 말도 못 한다. 영업소별로 자기 애인이 한 명씩 있다고 하거나, 회식할 때는 그냥 접대부 취급이다. '너는 내 옆에 앉고 술은 네가 따라' 이런 식이다. 술을 얼굴에 붓기도 하고 노래방에서 스킨십은 기본이다. 심지어 밤늦게 대리운전 좀 하라고 불러낸다. 그동안 인간 취급도 못 받고 살아왔다. 우리가 자기들이랑 같은 직접고용 정규직이었으면 그렇게 했겠나."
대법원 판결났지만 유명무실한 '비정규직 제로'
- 2013년 낸 근로자지위소송에 대해 올해 대법원이 직접고용 하라고 판결했다. 판결 대상자로서 당시 기대가 있었을 텐데.
"8월 26일인가, 선고가 나올 거라는 걸 인터넷으로 확인했다. 질 거라는 의심은 한 번도 안했지만 막상 판결 난 거 보고 엄청나게 고민했다. 도로공사가 분명히 대법 판결자만 직접고용 대상으로 할 게 뻔해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겠더라. 어떻게 보면 대법 판결은 우리가 두 달간 투쟁한 결실이었다. 그러나 이 판결로 내부가 분열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사실 판결 나기 전날 밤에 박순향 부지부장과 고민을 많이 했다. 안 들어가기로 마음먹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가벼웠다. 사회적으로 너무 의미 있는 판결인데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는 게 안타까웠다."
- 요금수납원 6500여 명 중에 5천여 명이 자회사로 전환했다. '자회사 전환'은 정부의 공공부문 가이드라인 지침이다. 임금 30% 인상, 정규직 정년 1년 연장 조건에도 계속 직접고용을 주장하는 이유는 뭔가.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도 임금 인상폭은 10~15% 사이다. 근데 자회사 가게 만들려고 30%라는 무리수를 둔 거다. 왜 국민 세금으로 그렇게까지 하면서 자회사가 좋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무엇보다 자회사는 큰 용역회사에 불과하다. 이익이 안 되고 필요가 없어지면 언제든 없애버릴 수 있다. 이미 그런 사례를 많이 봐왔다. 도로공사에 있는 '하이플러스카드사', 'DB정보통신' 처음엔 다 자회사였다. 지금 다 민간으로 넘어갔다."
- 2022년 스마트톨링(무인 차 번호판 인식 요금 부과 기술) 도입 예정으로 알려졌다. 수납업무가 사라지면 자회사로 간 노동자들은 어떻게 되나.
"내 말이 그 말이다. 지금 설립한 자회사(한국도로공사 서비스)는 고유 업무가 수납업무다. 그런데 이 수납업무가 없어졌을 때 과연 고용대책을 세우겠나. 기타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도록 노력한다지만 그것도 한번 지정된다고 영원한 게 아니다. 계속 기획재정부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그러다가 나중에 수납업무가 필요 없어지면 용역계약 자체를 끊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 정부는 2017년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약속했다. 현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비정규직 없애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처럼 포장되어 있다. 처음엔 우리도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투쟁할수록 자회사 전환은 '가짜 정규직 전환'이라는 게 명백해졌다. 노동부는 유권 해석에서 자회사에 합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줬고, 국토부에 찾아가서 너희가 관리·감독하는 도로공사 만행을 책임지라 했을 때 한 번도 적극적으로 나온 게 없었다. 기재부에 찾아가서 왜 (임금인상) 30% 인정해주면서까지 자회사 밀어붙이냐, 잘못된 거 아니냐고 해도 단 한 번도 면담을 안 해줬다. 어쩜 이렇게까지 안 움직일 수 있나 싶더라. 그래서 이제는 청와대에 얘기한다. 지난 과정을 짚어보면 정부가 자회사 만드는 공범이고 규합했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잘못 인정하고 다시 재정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