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
바다출판사
<한밤중에 잼을 졸이다>
히라마쓰 요코
이영희 옮김
바다출판사
2017.7.21.
"좀 와 봐. 빨리 도와!" 요리하는 도중 엄마가 큰소리로 부르는 이유는 알고 있다. 엄마가 초밥용 밥을 밥통에 담아 놓으면 기운차게 부채질하는 게 나의 몫이다. (12쪽)
저는 제가 쓴 글을 읽으면서 곧잘 눈물에 젖습니다. 어떻게 이런 글을 내 두 손으로 쓸 수 있었나 하고 돌아보면서 찡할 때가 있습니다. 잘 쓴 글이라서 눈물에 젖지 않아요. 예전 어느 때에 살아낸 어느 하루를 이렇게 고스란히 담아내었네 싶어서 가슴이 벅차오르고, 그무렵 아이들하고 어떤 나날을 지었네 하고 새삼스레 떠올라서 파르르 떨립니다.
글을 쓸 수 있는 힘이 무엇일까 하고 돌아봅니다. 아이들을 곁에서 돌보거나 지켜보는 하루를 살아내며 글을 쓰고 사전을 짓는 마음이 무엇인가 하고 되새깁니다. 아무래도 스스로 제 글을 읽으면서 새롭게 깨어난다고 할 만해요. 스스로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새롭게 눈을 뜬다고 할 만해요. 둘레에 아름다운 이웃님 책도 삶도 숱하게 있습니다만, 바로 오늘 이곳에서 스스로 가꾸는 살림이 바탕이 되어 무엇이든 할 수 있구나 싶어요.
"씻기 쉬운 솥이 좋은지, 씻기 어려워서도 밥맛에 집착하는지……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보면, 밥 짓는 방법이나 솥의 종류도 자연히 결정되지 않을까요?" (106쪽)
저는 '남이 차려 주는 밥'이나 '맛집이라는 곳에서 사다 먹는 밥'보다 손수 지어서 차리는 밥이 가장 맛있다고 느낍니다. 스스로 땅에서 얻어 스스로 땅에서 거두고 스스로 부엌에서 지은 밥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맛있구나 싶어요. 이 얼거리처럼, 다시 말해, 제가 손수 지은 밥을 스스로 먹으면서 몸에 기운이 돌듯, 제가 손수 쓴 글을 스스로 읽으면서 마음에 기운이 돌지 싶어요.
살림살이 이야기를 다루는 <한밤중에 잼을 졸이다>(히라마쓰 요코/이영희 옮김, 바다출판사, 2017)를 읽고서 책상맡에 그대로 둡니다. 옮김말은 퍽 아쉬워서 첫 줄부터 끝 줄까지 온통 연필로 이 말씨는 저렇게 고쳐 놓고 했는데요,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자라는 동안 이 책을 가만히 읽고 같이 누리면 아름답겠다고 느꼈습니다.
이 책은 대단한 밥짓기를 다루거나 들려주지 않습니다. 글쓴님이 스스로 지어서 스스로 누리는 손맛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대단한 멋밥이나 맛밥 차리기가 아닌, '모든 사람이 저마다 손수 느긋하게 집에서 밥을 차려서 조촐히 누리면 스스로 몸이며 마음에 가장 빛나는 하루가 된다'는 이야기를 펴요. 책을 읽는 내내 빙긋빙긋 웃었습니다. 이렇게 살뜰히 밥살림을 다루는 밥책(요리책)은 드물구나 하고요. 드문 만큼 한결 값지고, 드물기에 참 곱구나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