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발 나온 야생 고양이입니다. 다소곳이 앉아 밥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임현철
근무 중. 저만치서 야생 고양이 한 마리가 걸어옵니다. 야생들은 집 고양이와 달리, 알아서 먹어야 합니다. 모든 생명은 태어난 이상, 노병사(老病死)가 자동적으로 뒤따릅니다. 깨닫지 못한 중생에겐 이 자체가 '고(苦)'입니다. 생(生)의 조건으로, 먹어야 하는 '식(食)'이 필연입니다. 어차피 살아야 할 삶, 이왕이면 행복하게 살면 좋겠지요.
고양이, 어떤 날은 쥐 한 마리 입에 물고 지나갑니다. 폼이 아주 당당합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먹이를 구했다는 거죠. 천하가 제 것이라는 몸짓입니다. 어느 날은 축 늘어졌습니다. 안 봐도 비디오입니다. 쫄쫄 굶은 뒤끝이던지, 아직 먹이를 구하지 못한 탓. 암튼, 자연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눈치코치가 빨라야 합니다. 배고픈 고양이를 불러 세웁니다.
"야옹아, 어디 가냐?"
걸음을 멈춥니다. 처음에는 귀찮다는 듯 시큰둥했습니다. 뿐 아니라 '뭐하는 놈이 날 부르나?' 싶은 표정. 차츰, '아는 척하는 놈이 없는데 고놈 참 별거네!'하는 모양새. 그러던 게 이제 부르면 다가오기도 합니다. '무슨 일이냐?'란 거죠. 여기에 오기까지 세월이 걸렸습니다. 먹이를 주는 등 노력이 필요했지요. 그렇게 얼굴을 익혔고, 친해졌습니다.
먹고 살기 고달팠을까. 언제부턴가 녀석들은 대개 도시락이 배달되는 식사 시간 전후로 나타났습니다. 같이 나눠먹자는 거죠. 어느 날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다소곳이 앉아 있습니다. 앞발은 세우고 뒷발은 접어 다소곳이 앉은 모습. 어떤 날은 문 앞까지 다가와 처량하게 밥 주기만을 기다립니다. 이를 보고 '탁발'을 떠올렸습니다. 목탁과 바리때만 없지 영락없는 탁발입니다. 여기서 든 생각 하나. 뭇 생명의 생존과 행복을 위한 필수조건은 무엇일까!
"삶은 나누기와 빼기를 해야 행복하다."
지인의 말을 들음과 동시에, "맞다" 했습니다. 왜냐면 삶의 깊이를 알아챘기 때문입니다. 아시죠? 현재 우리는 늘 바라기만 합니다. 흔히 "~주소서!", "~믿습니다!"로 대변되는 사회. 더하기만을 바라는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이를 떠올리면 나누기와 빼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하여, 가슴에 새겼습니다. 지인의 말은 예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나누기와 빼기만으로 충분한데 "자기 생활에 맞는 사칙연산이 필요하다"더군요.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를 적절하게 보태야 행복의 가치가 더 커진다나. 이 역시 크게 공감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풀어보았습니다.
'나누기와 빼기에, 더하기와 곱하기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면 인생은 더욱 더 행복하다!'
불가(佛家)에서도 이와 비슷한 개념이 있습지요.<금강경>에 나오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입니다. "바라는 바 없고 집착함 없이 남에게 베푼다"란 뜻입니다. 이는 '늘지도 줄지도 않는 가운데 나는 공하다'는 <아공(我空)>을 넘어, '너와 나 그리고 온 우주가 하나!'라는 <법공(法空)> 개념이 강조된 겁니다.
유가(儒家)도 이 개념이 있습니다. 공맹(孔孟)은 '본성(本性)'과 '양심(良心)'으로 칭했습니다. 모든 생명은 가지고 태어난 근본 성질이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善)과 비선(非善)을 분별하는 의식이 있다는 겁니다. 이는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으로 대변됩니다. 이를 알고, 모든 생명 및 무생물과 함께 나누며 살길 강조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