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발행된 ‘한살림 무크지’(좌)와 1992년 처음 책자로 발간된 한살림선언(우)
모심과살림연구소
한살림선언의 생명론은 수운과 해월의 동학사상에서 많은 부분 유래되었다.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 이천식천(以天食天), 만사지식일완(萬事知 食一碗), 향아설위(向我設位), 후천개벽, 십무천(十毋天), 불연기연(不然其然) 등 이 모든 것이 말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내려놓고 우주 생명이 얼마나 크고 무궁한가를 깨닫게 될 때 모든 생명과 조화롭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한살림선언은 생명존중의 세계관에 기초해 새로운 가치와 생활양식(lifestyle)을 실현해 나가는 실천운동을 제안했다. 한살림운동을 하는 이유는 더 이상 현재와 같은 생활방식으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농약과 제초제로 처리된 음식으로 살 수 없고, 핵과 화석연료로 생명을 온전히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혼자서 살 수 없고, 자기만 좋은 음식 먹고 건강할 수 없다. 또 자기만 농약, 비료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유기농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서로 공생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생명사상가 장일순 선생은 한살림운동이 지녀야 할 마음(가치)으로 자애, 검약, 겸손 세 가지를 들었다. "겸손의 토대 위에서 세상을 넉넉하게 하고 풍요롭게 하자, 알뜰함으로 세상의 누구도 굶주리지 않게 하고, 자애 속에서 잘못한 사람조차 안식처를 찾도록 하자는 게 한살림 정신"이라면서, 이러한 진리를 타락하고 부패한 도시 속에서 펼쳐 나가고자 하는 것이 한살림의 뜻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살림 초대 회장 박재일 선생 역시 "생산자는 소비자의 생명을, 소비자는 생산자의 생활을 책임지자"라는 생산자와 소비자 하나운동, 도농직거래운동, 생명을 살리는 친환경 유기농업운동을 제창하고 실천했다.
지난 세기말에 발표한 한살림선언의 전환의 논리는 30년이 흐른 지금도 의연하다. 20세기 말 위기의 징후들은 21세기에 들어 지구인의 일상을 위협하는 극단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최근 연구들은 2030년에서 2052년 사이 지구의 평균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1.5°C 이상 상승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2015년 파리기후협정의 예측치보다 훨씬 빠르게 지구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 '2050년 무렵 지구 육지의 35%, 지구 인구의 55%가 생존의 문턱을 넘어서는 치명적인 조건에 노출될 것'이라는 경고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그러나 21세기 문명의 위기 앞에서 인간의 욕망은 20세기 대량생산-대량소비 체제의 관성과 미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30년 한살림선언은 70만 조합원과 2천여 생산자들의 자유선언이자 생명살림의 실천강령이었다. 한살림은 농약과 화학비료로 황폐해진 땅 위에 생명농업의 싹을 틔우고, 각박한 도시 소비자들에게 나눔과 환대의 공동체를 제안하였다. 도시와 농촌, 생산자와 소비자가 둘이 아님을 선언하고, 생산자는 소비자의 생명을 지키고, 소비자는 생산의 생활을 책임지는 연대와 공생을 실천했다. 그 결과 우리 사회에서 농민, 농업, 농촌에 대한 새로운 희망이 조금씩 일어나고, 친환경유기농업과 도농직거래, '생산자와 소비자가 하나'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지금 전국 118개 한살림 생산자 공동체와 87개 가공산지에서 친환경유기농산물과 우리 농업의 미래가 만들어지고 있다. 226개의 도시 한살림매장에는 매일 생산자들의 땀이 밴 농산물과 가공품이 공급되고 하루에만 수만 명이 이를 이용하고 있다. 전국 400여 마을 모임과 500여 개의 조합원 소모임에서 옷 되살리기, 병 재사용, 자원순환, 기후변화 비상행동, 농지살림, 햇빛발전, 유전자조작식품(GMO)반대운동, 탈핵 운동, 푸드플랜, 친환경 공공급식운동, 먹을거리 나눔운동, 국제민중연대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지진 피해를 본 네팔 주민을 지원하고 최근 강원도 산불피해 주민에게 한살림의 유기농 쌀 5t을 강릉시에 기부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