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위협하는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도 양동시장과 대인시장의 상인들이 시민군들과 함께 나누었던 주먹밥은 단순한 밥이 아니었다
5.18 기념재단
수습대책위원회나 시민들은 더 이상의 유혈사태를 막고자 노력했지만 신군부의 속셈은 달랐다.
민주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면서 번번히 독재자의 손을 들어주는 미국은 신뢰할 수 없는 동맹국이었다.
"존 위컴 주한연합사령관은 그의 작전지휘권 아래 있는 한국군을 군중 진압에 사용할 수 있게 해 달라는 한국정부의 요청을 받고 이에 동의했다. 또한 오끼나와에 있는 조기경보기와 필리핀 수빅 만에 정박중인 항공모함 코럴시호를 한국 근해에 긴급 출동시키기로 결정하는 등 광주항쟁에 적극 개입하기 시작했다." (주석 4)
역사상의 많은 '해방구'는 불안했다. 더러 따옴표를 제거하는 진정한 해방이 되기도 했지만, 곧 반동(기득권) 세력에 밀려 혹독한 희생을 치르는 경우가 많았다. 존 위컴의 행위를 알 길이 없는 광주 시민들은 우선 해방감을 느꼈다. 하지만 불안한 해방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