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권센터가 지난 21일 공개한 기무사 계엄령 문건 원본 '현 시국 관련 대비계획'에 NSC(국가안정보장회의) 관련 부분. ‘NSC를 중심으로 정부부처 내 군 개입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라고 돼 있다. 문건 작성 당시 NSC 의장인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다.
군인권센터
고려 초 이흔암의 최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모사건은 증거를 잘 남기지 않는다. 그래서 증언이나 정황증거만으로 유죄가 선고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번 촛불 계엄령 문건처럼, 구체적인 서류가 나오기 쉽지 않다.
역모 사건에서는 정황 증거로도 볼 수 없는 것이 유죄의 근거로 활용됐던 일이 종종 있었다. 물론 옳지 않은 일이지만, 증거를 잘 남기지 않은 사건의 특성상 이런 폐해들이 적지 않게 생긴다.
고려 초기 이흔암의 사례에서 나타나는 역모사건의 특성을 들여다 본다면, 황교안 대표는 지금 스스로 자신을 변호해야 하는지 절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흔암은 궁예의 충신이었다. 그는 궁예 정권을 전복한 왕건의 개국에 동조하지 않았다. 웅주성(공주성) 성주였던 그는 불만의 표시로 근무지인 웅주성을 무단 이탈해 집으로 돌아가버렸다. 그 때문에 웅주성은 후백제에 넘어갔다.
그 뒤 이흔암이 쿠데타를 계획하고 있다는 고발이 접수됐다. 그가 세력을 규합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왕건은 신중했다. 이흔암의 근무지 이탈을 문제삼지 않았던 그는 쿠데타 계획 고발에 대해서도 비슷한 입장을 취했다.
<고려사> '이흔암 열전'에 따르면, 왕건은 "모반의 증거가 뚜렷이 드러나지 않았다"라며 이흔암 체포를 재가하지 않았다. 대신, 정보원을 그 집 주변에 배치해 감시하도록 했다. 실제로 역모를 꾀하는지, 증거를 찾아오라고 했던 것이다.
왕건은 결국 이흔암을 체포하고 처형했다. 감시 중이던 정보원의 보고에 따른 것이었다. 그런데 정보원이 보고한 내용은, 지금 황교안 대표가 받고 있는 의혹에 비교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흔암 열전'에 따르면, 왕건이 체포의 명분으로 인정한 것은 이흔암의 부인이 내뱉은 한마디였다. 부인 환씨가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만약 남편 일이 잘 되지 않으면 나도 화를 입겠구나"라며 긴 한숨을 쉬고 방 안에 들어갔더라는 것이다. 증거가 뚜렷하지 않다면서 이흔암 체포를 미뤘던 왕건이다. 그랬던 왕건이 환씨의 독백을 근거로 이흔암을 체포하고 자백을 받아낸 뒤 사형시켰다.
왕권은 이흔암이 뭔가 꾸미고 있었기에 부인이 그런 말을 했을 거라고 판단한 듯하다. 이흔암은 일반 백성이 아니라 고위층으로 군대를 지휘한 경험이 있는 데다가 왕건에게 불복종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꾸미는 일이라면 쿠데타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던 듯하다.
지금 황교안이 집중해야 할 일은
이흔암이 정말로 역모를 꾸몄든 안 꾸몄든 간에, 이 사례는 당시 역모 사건에서 요구되는 증거의 신뢰성 수준이 여타 사건에 비해 현저히 낮았음을 보여준다. 조금이라도 의심받을 만한 정황이 있으면, 역모죄가 인정됐던 동서고금 공통의 실상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황교안 대표는 '정치공세'로 치부하고 있는 모양새다. 황 대표가 스스로를 잘 변호해 쿠데타 혐의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대통령 권한대행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쿠데타 음모를 몰랐다면, 이는 권한대행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의미가 된다.
황교안 대표가 지금의 곤경에서 벗어나는 길은 '계엄령 문건 연루 의혹'을 반박할 보다 명징한 근거를 내놓는 것뿐이다. 이 과정이 선행돼야만 직무유기 의혹을 벗어나기 위한 또다른 싸움에 돌입할 수 있다. 그가 갈 길은 첩첩산중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황교안 대표가 집중해야 할 일은 바로 반박 증거 찾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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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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