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나래 이관 대표(가운데)
종로문화재단
지난 12일(토)에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일대에서 열린 '2019 종로랑 페스티벌'은 하나의 공감대를 필두로 모인 동아리들이 주인공이 되어 이끈 시민 본위의 축제였다. 바쁜 생활 속에서도 예술을 통해 삶의 원동력을 얻고, 모임 활동을 통해 남다른 공감대를 형성해온 이들은 각자의 장기와 작품들을 뽐내며 '생활문화 예술'의 산 가치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활약상을 보이며 축제를 빛낸 세 명의 시니어를 만났다.
축제의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어 갈 무렵, 등장한 '황금나래'는 현란한 스텝과 유연한 동작으로 관객들의 몸과 마음까지 들썩이게 만들었다. 종로노인종합복지관 공연봉사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황금나래'는 댄스스포츠에 대한 열정을 가진 60대 이상의 종로구민이 모여서 만들어진 단체다.
그러나 실력까지 아마추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2015년 '서울시연합회장배기 대회' 2위 수상과 2017년 '제15회 종로구청장기 댄스스포츠대회' 우승을 거머쥐면서 탄탄한 실력을 여러 차례 증명한 바 있다. 열정의 무대를 마치고 내려온 이관(만 77세, 1942년생) 대표와 막후 인터뷰를 가졌다.
춤 문외한, 맨 끝줄의 고수가 되다
무대를 휘어잡는 이관 대표의 댄스를 보고 있노라면, 소싯적 춤으로 날렸을 것만 같은 인상을 주지만 의의로 춤에는 전혀 문외한이었다고 한다.
"종양이 생기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64세에 은퇴를 했죠. 그리고 투병생활을 13개월 했어요. 항암치료 끝내고 나니 65세 아닙니까? 외출이 가능할 정도로 기력을 되찾고 어떤 걸 느꼈냐하면요, 자고 나서 눈을 뜨면 '오늘은 어디 가서 시간을 보낼까?'부터 먼저 생각하게 됩디다.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죠. 그걸 안 겪어본 사람은 절대 모를 거예요. 당시엔 복지관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어요.
친구들 만나봐야 주말에 등산가는 거 말고 더 있습니까? 그럼 나머지 5일은 어딜 가겠습니까? 뒷방 늙은이나 진배없어요. 답답한 마음에 아직 사회생활 하고 있는 친구들을 찾아가면, 자기 일 제치고 한두 번은 극진히 대해주지요. 그런데 딱 두 번만 가보면, '아, 내가 이 친구한테 방해가 되는구나!' 하는 걸 통렬히 느끼게 됩니다. 그걸 깨닫고 나면, 아무 데도 갈 곳이 없죠. 그래서 이런 저런 모임을 찾아다니면서 등산하는 걸로 소일을 했어요."
그렇게 삶을 지루하게 보내던 차에 종로노인종합복지관에서 봉사단을 찾는 것을 알게 되면서 복지관의 문을 두드리게 되고 '문화재 지킴이'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 와중에 바둑이나 원예도 배워보았지만, 크게 재미를 못 느꼈던 그는 어느 날 강당에서 스포츠댄스 강습 현장을 보게 되고, 춤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보수적이었던 시대를 살았던 이관 대표에게 춤은 여전히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저편 너머의 세계였다.
"우리 세대에서는 춤이라 하면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했어요. 절대 눈길 주면 안 된다고 하면서 65년을 살았는데 그 생각이 쉽게 고쳐지겠습니까? 원체 숫기도 없고 해서 차렷 자세로 구경만 했죠. 그때 강사 선생님께서 권하면서 해보라고 했다면, 절대 못했을 겁니다. 하고는 싶은데 나서서 하지는 못하고, 총무활동을 하면서 유심히 남들 하는 걸 관찰하기만 했어요. 그리고는 집에 가서 그대로 해보는 거죠. 안 되는 부분은 그 다음 주에 와서 또 보고, 집에 가서 혼자 해보고 그렇게 한 달 이상을 반복해보니까 기본적으로 몇 가지 스텝은 깨쳐지더군요. 그렇게 혼자 하다가 뒤에서 연습하는 무리에 서게 된 겁니다."
독학으로 익혔지만, 오랜 노력이 빛을 발했던 것일까. 뜻밖에도 그는 맨 끝줄의 고수가 됐다.
"맨 뒤에 서는 사람들은 기본적인 스텝도 모르면서 몸만 따라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 그 사람들이 되레 '이 사람, 참 잘하네!' 하면서 나를 따라하는 상황이 된 거예요. 허허."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간 병원에서 의사는 스포츠댄스를 한다는 그에게 '당신을 롤 모델로 삼아야겠다!'고 말할 정도로, 탁월한 선택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건강관리는 물론이고, 잃었던 웃음까지 되찾으면서 그는 삶의 즐거움을 더 크게 느끼게 되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