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리치 활동을 하며 햇볕에 화상을 입은 여성홈리스에게 연고를 발라주고 있는 김민정 상담원
문세경
보통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도 힘든 일이다. 거주지가 일정치 않고 몸과 마음이 바닥까지 추락한 사람들을 만나 관계를 맺고 신뢰를 쌓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다. 그런데도 꾸준히 그분들을 만나고 있는 김민정 상담원을 보며 1년만 활동을 하고 그만둔 내가 부끄러웠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진심 어린 마음으로 그분들을 만나고 있는 김민정 상담원이 존경스럽다. 오늘 만난 분이 어제보다 몇 마디라도 더 해주시는 게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고 한다.
"거리 생활은 모든 것이 노출되기 때문에 수시로 위험 상황에 처하게 돼요. 그래서 남성보다 여성은 눈에 잘 띄지 않아 만나는 일도 적어요. 어쩌다 만나더라도 대화에 응해주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며칠 전에는 신용산역에 갔다가 항상 그 자리에 앉아 계시는 여성분과 정말 오랜만에 대화를 했어요. 한여름에 뙤약볕에 앉아 계시다가 화상을 입었나 봐요. 화상연고를 사서 발라 드렸어요. 감기에 걸린 것 같기에 약을 드셔보셨냐고 물었더니 비싸서 안 드신다고 해요. 무료로 약 주는 곳을 알려드렸어요. 그날은 운이 좋은 날이었어요. 날카로울 때는 인사 한번만 해도 욕을 먹기 일쑤거든요. 여성 노숙인들은 거의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서 항상 조심스러워요.
거리에 계신 여성분들의 가장 큰 문제는 '안전'이죠. 남성분들이 여성분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많아요. 술 먹는 자리에 여성분이 계시다 싶으면 수시로 가서 살피죠. 그럴 때는 어떤 대책이 필요한데 강제로 여성분을 모시고 올 수 없어서 난감해요. 여성 노숙인 중에는 지적장애인이 꽤 많거든요. 정신과 선생님께 여성 노숙인 한 분 모시고 가서 정신감정을 받은 적이 있어요.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사람은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에 나한테 잘해주는 것 같다 싶으면 본능에 의지한 채로 그냥 기대버리거나 쉽게 믿어버린다고요. 남자들이 부드럽게 대하고 웃어주면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받아들인다는 거죠. 술 먹는 사람들 옆에서 가만히 쳐다보기만 해도 '한 잔 할래?' 하고 다가온대요. 술 먹고 나면 '너 거기서 그냥 자냐?'고 묻고. 나중에 물어보니까 아침에 일어나보면 거의 남의 집이거나 거리가 아닌 공간이라고 해요. 충격적이었어요."
여성 홈리스들이 위험을 피할 수 있는 곳은 가까이에 없다. 위험을 감수하거나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숨어 있어야 한다. 가장 위험할 때는 주취폭력이나 성폭력이 발생할 수 있는 곳에 노출되었을 때다. 이를 막을 방법은 역 주변에 여성 홈리스를 위한 현장지원센터나 일시보호쉼터를 만드는 것이다. 대부분 일시보호시설이나 현장지원센터는 남성 위주의 시설이라서 급히 도움이 필요한 여성에게는 불편한 곳이다. 김민정 상담원도 이 문제가 절실하다면서 말했다.
"서울역 근처에는 여성 노숙인 시설이나 쉼터가 없어요. 서울역 앞에 제가 일했던 여성 홈리스 일시보호쉼터인 '마더하우스'가 있었는데 운영이 어려워지자 문을 닫았어요. 그곳에는 고시원보다 약간 큰 공간에 침대랑 화장대가 따로 있었어요. 이후에 서울시 지원으로 '디딤센터'라는 곳을 열었는데 서울역에서 멀어요. 교통도 안 좋고, 안내하기도 쉽지 않고요. 지난번에 여성 한 분 모시고 갔는데 골목이 좁아서 차가 1대 밖에 못 지나가니 난감했어요. '마더하우스'처럼 개인 공간이 없는 것도 아쉽고요. 서울역 희망지원센터 안에 있는 응급구호방은 여성이 이용하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아요. 공간이 너무 작고 방에 화장실이 없으니까 씻으려면 나와야 하고 다 같이 자고... 쉼터 입소 상담을 하거나 아픈 분들이 아니면 주무실 수 없어요.
양화대교 남단에서 발견된 여성을 모시고 왔을 때도 희망지원센터의 응급구호방 안에서 다 같이 자야 한다고 하니 다음날 아침에 오신다면서 나가시더라고요. 지금 그 몸으로 나가면 또 어디서 긴급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제가 설득해서 여기서 주무시고 내일 병원에 가셔야 한다고 했어요. 또 한 가지는 이런 응급환자가 생겨도 밤에 근무하는 여직원이 없으니까 긴급한 여성 환자를 돌볼 수 없어요."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거리 생활은 만만치 않다. 몸이 아프거나 잘 곳이 없을 때 하루라도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참 좋으련만. 그런 곳은 대부분 남성 위주로 만들어졌다. 집이 있고, 위험에 노출될 일이 거의 없는 일반 시민들은 '열심히 일하면 어떻게든 살 수 있는데 왜 노숙을 하지?'라고 쉽게 말한다. 허기를 달래길 바라며 건넨 손길에 상처를 남긴다. 김민정 상담원은 그런 경험을 토해내며 안타까워했다.
"야간 아웃리치 상담원 일이 힘들긴 해요. 퇴근하고 집에 가서 쉬고 싶지만 내가 움직인 몇 시간이 그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감수하는 거예요. 2년 전인가, 정말 황당한 경험을 했어요. 몸이 아픈 분이 계셔서 말 몇 마디 건네고 간식을 드렸는데 지나가던 시민이 쌍욕을 하는 거예요. '너 같은 X들 때문에 저것들이 여기서 안 떠나고 있는 거야. 네가 뭔데 쟤네 먹여 살려?' 이러면서.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어요. 30분 동안 제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욕을 하시더라고요. 경찰에 신고를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그분의 자유니까 안 했어요. 나를 때리기라도 했으면 모를까. 머릿속으로 '나한테 하는 욕이 아니'라고 되뇌며 하던 일을 계속했죠. 불필요한 감정싸움에 휘말릴 때 빼고는 거리에 계신 분들 때문에 특별히 힘든 건 없어요. 간식으로 빵을 드렸는데 '누가 빵 달라고 했어? 밥을 줘야지!'라고 하실 때도 있지만 그분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며 감수해요.
제가 노숙인 관련 비영리민간단체에서 일할 때 친구 부부가 후원을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노숙인을 돕는 건 아닌 것 같다면서 후원을 끊었어요. 집 근처에 폐지 줍는 어르신들이 많은데 차라리 그분들을 돕는 게 낫겠다면서 이런 일을 왜 하냐고 그래요. 물론 노숙인 분 중에 게으르거나 알코올 중독인 분도 있지만, 여기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분들도 꽤 많거든요. 제가 100명을 만났을 때 단 1명이라도 노숙 생활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분이 있으면 저는 만족해요."
여성 홈리스에 필요한 건 '관심'
노숙인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은 아웃리치 상담원의 자존감을 낮춘다. 시민의 편견을 깨는 일,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살피는 일, 그것을 병행하는 일은 어렵다. 먹고 먹히는 적자생존의 시대에 '노력하면 다 잘 살 수 있어'라는 공허한 명제 안에 생각을 가두는 것만큼 폭력적인 게 또 있을까.
"우리 사회가 여성홈리스를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 '관심'인 것 같아요. 며칠 전에 양화대교에서 발견된 분도 지나가는 시민이 관심을 가졌기에 희망지원센터와 연결이 된 거잖아요. 센터에 오셨으니 병원에도 갈 수 있었고요. 여성들은 어떤 위험에 노출될지 모르니까 각별히 관심 갖고 지켜보는 게 가장 중요해요.
서울역 희망지원센터를 남성과 여성이 구분되어 이용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남성에게 폭행당한 경험 때문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분들도 있거든요. 역 가까이에 접근성이 좋은 여성 쉼터가 있어야 해요. 심리적으로도 편안하게 상담할 수 있고 서비스받을 수 있는 그런 곳이요."
'운명' 같은 인연이라고 해야 할지, 사회가 할 일을 대신하고 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려운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라는 슬로건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김민정 상담원은 이야기하는 내내 따뜻하고 잔잔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 모습이 오랜 여운을 남겼다. 인터뷰가 끝난 후 함께 식사하자고 권하자 김민정 상담원이 말했다.
"인터뷰하려고 집을 나오는데 같이 사는 그 친구가 언제 올 거냐고 슬쩍 묻더라고요. 왜? 그랬더니 짜장면이 먹고 싶다지 뭐예요. 죄송하지만 식사는 다음에 같이 해요."
[기획/ '보이지 않는' 여성 홈리스의 이야기]
① 폭력 아빠와 새엄마 피해 거리로... 여성 홈리스의 고백 http://omn.kr/1jdsi
② "난 엄마의 아바타였다... 남편은 날 죽이려 했다" http://omn.kr/1juz7
③ 아빠의 폭력, 애인의 배신... 그녀가 악착같이 일한 이유 http://omn.kr/1k477
④ "노래방에서 노래 부를 수 있어 세상 다 가진 기분" http://omn.kr/1kl57
⑤ "사기 당한 후 감금, 폭행... 살아있는 게 기적" http://omn.kr/1kxq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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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 인터뷰집,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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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 한 상자의 의미... 쌍욕 먹어도 거리에 나서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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