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경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참배객들(야스쿠니 신사 홈페이지)
최우현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나서 잘못된 상태를 시정해야 하지 않을까?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유족들의 요구도 바로 여기에 있다. 유족들에게 일체의 통지도 하지 않았던 폭력적 무단 합사를 철폐하고 조상들의 넋을 돌려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야스쿠니 신사의 입장은 무엇일까?
납득할 수 없는 야스쿠니의 논리
앞서 소개한 다큐에서 야스쿠니 신사의 입장을 대변한 도조 유코씨가 발언을 통해 야스쿠니 신사의 입장을 소개한다, 실제로 도조 유코 씨의 주장은 야스쿠니 신사의 입장과 대부분 일치한다.
도조 유코: "당신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가족에게 알리지도 않고 마음대로 합사했다고 주장하시지만... 이것은 일본의 룰이었어요. 전사한 사람은 어떻든지 야스쿠니에 모신다는 것은 일본의 룰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타이완도 한국도 말할 필요도 없이 '일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차별하지 않고 합사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도조 유코: "(이희자 씨에게) 아버님의 심정을 소중히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 당신의 척도로 아버님의 심정을 전부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 당시 한국, 타이완의 아버님들은 정말로 용감하게 싸우셨습니다. 그것을 60년도 지난 지금 아버님을 야스쿠니에서 빼내려고 하는 것은 아버님의 의사를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그래도 아버님을 빼내고 싶으신가요?
그리고 또 하나, 일단 합사를 하면 영혼들은 하나의 방석처럼 되어버립니다. 이 사람을 빼내고 저 사람을 빼내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합사(合祀)라는 말은 사전에 있어도 분사(分祀)라는 말은 없습니다."
*<KBS 스페셜-야스쿠니와의 전쟁, 1편 '야스쿠니와 세 여자'>(2006.8.13. 방영)
정리하자면 ▲그 당시(전사한 시점)에서는 조선 출신자도 모두 일본인이었으므로 죽은 후에도 일본인이라는 점 ▲야스쿠니 신사에 신으로 모셔진다는 생각으로 싸우다 죽었다는 점 ▲교리상 하나의 영혼을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한국인 합사'를 철폐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한국인이 수천 년간 이어 내려오고 지켜온 전통적인 사생관과 죽은 자를 위로하던 풍습 따윈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야스쿠니 신사의 사생관, 종교 교리를 강요하는 논리다. 이에 대해 "야스쿠니 신사 합사 문제는 민간 풍습에 대한 일본 국가 권력의 폭력적 개입으로 인해 치유되지 않는 평생의 한"이라는 지영임 교수의 비판이 있기도 했다(지영임(2013), 야스쿠니 재판을 통해 본 한일 종교관의 쟁점과 해결방안).
위자료 '1엔 소송'
이러한 마음의 상처에도 불구하고 유족들은 오랜 기간 주위로부터의 오해와 편견에 시달려 왔다. 무엇보다 뼈아픈 것은 전후 사정은 알아보지 않은 채 이들을 친일파라고 매도하는 시선들이다.
"어떤 사람은 속 모르고 야스쿠니에 있다고 하면 뭐라고 말하는 줄 알아요? 친일이라는 소리를 합니다. 얼마나 일본에 충성을 다했으면 야스쿠니에 모셔놓고 그렇게 잘 대접하는데 무슨 그게 한이 되냐고 합니다. 아주 죽을 것 같아요. 그 소리를 들으면..."
*출처: <YTN> 박남순 / 야스쿠니 무단합사 피해자 후손 인터뷰( '19.3.5.)
민족문제연구소 등에 따르면 위 박남순(76)씨의 아버지 박만수씨는 1942년 11월에 군속으로 징용되어 남양군도 브라운 섬에서 희생됐다. 그와 함께 야스쿠니 합사 철폐 소송에 참여하고 있는 이명구(81)씨의 아버지 이낙호씨도 마찬가지로 1944년 군속으로 징용, 남양군도 팔라우 섬에서 사망했다. 모두 일제의 강제징용에 의해 가족을 빼앗겼다. 이들의 이야기는 <빼앗긴 어버이를 그리며>라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증언집을 통해서도 자세히 알 수 있다.
물론 아주 드물게, 자발적으로 전쟁터에 나가 전사하고 야스쿠니의 제신으로 모셔진 한국인 영령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특수한 경우를 일반적인 일로 전제하고 2001년 이래 20년 가까이 일본 정부, 야스쿠니와 싸워온 유족들을 친일이라 매도할 순 없는 것이다.
또 하나의 악질적인 오해는 이들 유족들이 '돈'을 위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전혀 맞지 않은 사실이다. 실제 소송에 참여한 한국인 유족들은 매번 위자료(손해배상)를 요구하긴 했지만 그 액수는 불과 '1엔'(약 10원). 그야말로 상징적인 액수다. 돈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유가족들은 다시 소송(2차 항소심)을 준비 중이다. 1심 도쿄 지방법원 패소의 아픔을 넘어 주저 없이 상급 재판소의 문을 두드릴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른다. 1심 판결까지만 해도 5년 7개월이란 긴 시간이 소요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항소심에는 유족들이 납득할 만한 답변이 나올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도 전망은 어둡기만 하다. 지난 5월에도 일본 도쿄 지방법원은 판결 당일 5초가량의 판결문 낭독만 하고 판결 이유조차 설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참으로 무책임하다. 그 한마디를 하려고 5년 7개월을 기다리게 했단 말인가.
이처럼 현 일본 정부와 사법부는 어떠한 경우에도 야스쿠니 신사를 향해 손을 들어주고 있다. 일본이 한국인 합사의 잘못됨을 인정하려면 강제징용의 잘못된 역사를 다시 한번 들추어내고, 무단 합사와 같은 무형적 폭력 행위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극우 정치를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지금의 일본 정부가 스스로 나서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는 기대하기 어려운 실상이다. 광복 후 7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났지만 국제사회가 인정한 전쟁 범죄의 가해자는 여전히 당당하고 피해자는 그 몰염치에 상처받고 있다.
10월 17일(목)부터 3일간 야스쿠니 신사의 제사, '추계예대제'가 거행된다. '야스쿠니 뉴스'가 또 한 번 포털의 메인을 차지할지도 모른다. 올해는 한일 양국의 역사 전쟁 한가운데 방치된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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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는 야스쿠니라는 '생지옥'에 갇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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