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9일 초머 모세 Ph.D. 대사가 단국대학교에 개설된 헝가리연구소의 현준원 교수와 장두식 교수를 대사관저로 초청해 자리를 함께했다.
주한 헝가리대사관
이날 6.25 당시 헝가리로 건너간 북한 고아들과 유학생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언급됐다. 초머 대사는 "1950년대에 헝가리로 유학 간 북한인이 1천여 명이었다"면서 "1956년에 헝가리에서 반소 혁명이 일어나자 (그 파급력이) 한반도까지 연결됐다"고 말했다.
헝가리혁명은 1956년 10월 23일 소련에 대항한 반소혁명으로 전개됐다가 13일 만에 실패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유학생 가운데 6.25 참전 경험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 한 학생은 헝가리 혁명이 일어나자 학과 친구들에게 기관총을 비롯한 무기 사용법을 가르쳤다. 이렇듯 북한 유학생들이 혁명을 도운 구술기록이 헝가리 현지에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소련으로 기울어진 북한은 혁명이 일어나자마자 유학생들을 모두 소환해버렸다. 그 가운데 4명은 서유럽으로 탈출했다. 이중 한 명이 한국으로 건너와 이승만 당시 대통령을 만났다.
초머 대사는 "이 학생은 헝가리 혁명에 참여했고 이승만 대통령의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면서 "당시는 여의도에 공항이 있었는데 거기서 환영 인파에게 환영받는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있다. 그는 이 대통령과 자주 만났고 반소 혁명의 내용을 직접 전달했다. 이후 이 학생은 미국으로 건너가 유명해졌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이승만 대통령은 헝가리혁명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는 과연 이런 혁명이 북한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지 점쳐보며 사비로 1만 달러를 헝가리에 후원했다. 이때 국민들이 모은 성금을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헝가리에 보내기도 했다.
당시 한 초등학생이 유엔 사무총장에게 헝가리혁명에 유엔이 개입해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그가 바로 반기문 전 사무총장이었다. 지난 2006년 헝가리혁명 50주년을 맞아 헝가리정부는 반 전 총장에게 십자훈장을 수여했다. 대학생 신분으로 '헝가리 자유수호 학도의용군'이라는 조직을 만들었던 이만섭 전 국회의장과 유재건 전 열린우리당 의원도 함께 훈장을 받았다. 초머 대사는 "헝가리는 지지운동했던 사람들을 잊지 않고 모두 훈장을 줬다"고 전했다.
한편 북한으로 돌아간 유학생들은 그 뒤 어떻게 살았을까. 남한의 미국 유학생들이 지도자급으로 성장한 데 반해 소련을 비롯해 동유럽으로 보내진 북한 유학생들은 지방으로 배치돼 평생 감시 속에 살았다. 이것은 외부 정보를 고도로 통제하는 북한사회에선 놀라운 일이 아니다.
"당시 국제결혼을 한 유학생들이 강제 이혼을 당하는 등 슬픈 일이 많았다. 헝가리 정부는 북한 유학생들과 연락하고자 궁리하다가 공식적으로 '문화친선교류협회'를 만들어 이 단체를 통해 이북으로 책들을 보내려고 했다. 한데 북한이 유학생들이 그 책을 못 보게 했다.
이들은 반소 혁명을 경험했으므로 북한당국은 이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멀리 떨어져 있는 지방으로 보냈다. 그래서 유학생 출신들은 북한 사회에서 큰 역할이 없었다. 미국으로 간 한국 유학생들과는 전혀 다르고 비교할 수 없다."
다만 그는 "1~2명이 높은 지위로 올라갔고 1980년대 말 헝가리와 북한이 다시 밀착했을 때 헝가리에서 지냈던 전쟁 고아 출신들이 이때 헝가리와 접촉한 예가 있다"고 덧붙였다.
6.25 당시 헝가리는 사회주의 우방국으로서 황해도 사리원에 병원을 세우고, 전쟁고아를 받아들였다. 고아 및 유학생들의 체류 비용은 모두 헝가리가 부담했고, 북한은 한푼도 내지 않았다. 유학생과 고아들을 받아들인 여타 동유럽 우방국들도 마찬가지였다. 전쟁고아들을 위해 헝가리는 수도 부다페스트에 '김일성 초등학교'를 세웠다. 이때 북한 학생을 가르친 교사가 쇠베니 얼러다르(1914~1980)였다.
헝가리에 소개된 북한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