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30일 ‘채무자회생법 부칙 개정안’ 입법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채무자가 삭발로 국회에 호소하고 있다.
참여연대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보자. 2017년 12월 12일 법률 제15158호로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하 "채무자회생법")>이 개정됐다. 개인회생의 변제기간 상한이 5년에서 3년으로 줄어든 것이다. '개인회생'이란 직장이 있거나 사업을 하는 채무자가 빚이 너무 많아 자기 소득으로도 다 갚을 수 없을 때 자신의 월급이나 사업소득에서 법원에서 인정하는 생계비를 공제한 나머지 돈으로 일정기간 빚을 일부 갚고, 나머지를 면책받는 제도이다.
개인회생 신청 채무자는 법원에 변제기간과 금액을 정한 변제계획을 제출하고, 법원은 심사 후 이를 인가한다. 예컨대 1억 원과 이자 2,000만 원의 빚이 있는 월급 150만 원의 독신 채무자는 원금에 대해서만 한 달에 50만 원씩 5년(60개월) 동안 변제하여 3,000만 원을 갚겠다는 변제계획안을 제출할 수 있다.
채무자가 변제계획에 따라 변제를 마치면 법원은 직권이나 채무자의 신청에 따라 나머지 빚 원금 7,000만 원과 이자 2,000만 원을 면책할 수 있고, 이후 채무자의 임의 지급 외에는 채권자가 법원에 그 이행이나 집행을 구할 수 없다.
채무자가 개인회생 절차에 따라 변제해야 하는 기간이 최대 5년에서 3년으로 단축된 것이다. 변제기간이 단축되면 채권자가 변제받는 돈은 줄어들지만, 채무자는 그만큼 빨리 빚의 늪에서 빠져나와 정상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종전 법에 따르더라도 개인회생의 최대 변제기간이 5년이었을 뿐, 법원은 채무자의 형편에 맞게 변제기간을 1년이나 2년, 3년 등으로 얼마든지 다양하게 정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법원들이 변제기간을 5년으로 경직되게 운용하여 제도의 실효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많았다.
법 개정된 후인 올해 상반기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가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에게 받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채무자 중 약 28%가 중도 탈락하는데 그 시점이 대부분 3년 무렵으로 나타났다.(2019년 4월 10일 <
개인회생 변제기간 단축 개정의 의미와 대법원 2018마6364 결정의 문제점 진단> 이슈리포트). 채무자들이 개인회생 절차에서 중도 탈락하면 그동안 갚았던 돈으로는 이자도 다 감당하지 못 하는 경우가 많아 다시 원래의 채무상태로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날이야 어쨌든 이제 법이 개정됐으니 과도한 빚 때문에 힘들어하는 채무자들이 숨통이 좀 트이게 된 것이 아닌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파산 전문법원인 서울회생법원의 경우 2018년 1월 개정법 취지를 살려 '개인회생 변제기간 단축에 관한 개정법률 시행 이전의 경과사건 처리를 위한 업무지침'을 통해 개인회생을 신청하지 않았거나 신청 후 변제계획이 인가되지 않은 채무자는 물론, 이미 변제를 시작한 채무자라도 ①변제 개시일로부터 36개월 이전이면 36개월 동안 변제 후, ②이미 36개월 이상 변제했을 시 신청일의 다음 달을 변제종료일로 하는 변제계획 변경신청을 허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한빛자산관리대부 등 몇몇 대부업체들이 서울회생법원의 위 결정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은 대법원에 올라갔고, 대법원은 뜻밖에도 서울회생법원의 결정이 잘못되었다면서 그 결정을 파기함으로써 대부업체의 손을 들어주었다(대법원 2018마6364 결정). 대법원은 개인회생제도의 도입 취지에 맞게 회생 가능한 채무자들을 조속히 적극적인 생산 활동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하려는 데에 채무자회생법의 개정 취지가 있다고 보면서도, "개정규정 시행 전 신청한 개인회생 사건의 경우 개정 전 규정에 대한 채권자 등 이해관계인의 신뢰가 개정규정 적용에 관한 공익상의 요구보다 더 보호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여 그러한 신뢰를 보호하기 위하여 그 적용을 제한"한 것이라는 논리를 만들어 서울회생법원의 변제계획변경 인가 결정을 적극적으로 파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