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에서 검찰 깃발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연합뉴스
일생에 단 한 번도 검찰청에 가본 적 없는 사람들도 검찰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갖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검찰청은 무서울 뿐 아니라 결코 정의롭지 않은 곳이라는 느낌이 상당수 국민들을 지배한다. 텔레비전 드라마 작가들이 검사라는 직업을 대체로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것도 그런 정서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검찰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국민 정서가 이번 서초동 촛불집회로 집약됐다고 할 수 있다.
일요일인 13일 국회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이낙연 국무총리는 "국민이 검찰개혁을 요구하시게 된 직접적 이유는 검찰의 제도와 조직보다 행동과 문화에 있습니다"라고 언급했다. 이 말처럼 검찰이 신망을 잃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간 검찰이 보여준 모습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인권침해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일부 검사들이 기소권·수사권·구형권을 남용하는 과정에서 숱한 국민들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점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자명하다.
그런데 그런 인권침해 중에서 제대로 부각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 바로 간첩 조작 사건이다. '간첩 조작' 하면 흔히 과거의 국정원이나 기무사를 먼저 떠올리지만, 이는 검찰의 협조 없이는 절대로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검찰의 협조 아래 만들어진 '간첩 조작' 사건
간첩 조작 사건이 완성되려면, 법원에서 유죄 선고가 나와야 한다. 그러려면 검사가 그에 맞게 수사하고 기소하고 구형해야 한다. 이처럼 검찰의 역할이 필수불가결한데도, 그동안 간첩 조작 사건들과 관련해서는 검찰의 역할이 크게 주목되지 않았다.
하지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가)'가 내놓은 보고서들을 보면, 검찰의 역할이 결코 작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다. 일례로, 전두환 정권 초기인 1980년의 김기삼 사건을 들 수 있다.
1929년생인 김기삼은 해방 직후 육군 14연대에서 복무했다. 그러던 중 1948년 10월 여순사건에 가담했다가 체포됐다. 여순사건(여순반란)은 제주 4·3항쟁에 대한 진압 명령을 거부한 군인들의 반란을 말한다.
진실화해위원회가 발행한 <2008년 상반기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여순사건 뒤 풀려난 김기삼은 한국전쟁(6·25전쟁) 중인 1952년 국군에 입대했고 1965년부터는 한국전력 인천지점에서 전기 검침원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1980년 12월 8일 간첩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국정원) 수사관들에게 연행된 뒤 1983년 11월 8일 대법원 판결로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을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