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군인 앞에 무플을 꿇어야 하는가. 저들이 폭도인가 아니면 저 군인은 북한군특수부대인가? 둘다 아니다.
5.18기념재단
5월 20일의 시위 중 두 곳의 상황을 살펴보자.
오후 5시 50분, 충장로 입구 쪽의 시위 군중 5,000여 명은 스크럼을 짜고 도청을 향하여 육탄돌격을 감행했다.
계엄군과 충돌한 후 몰려 나온 시위대는 "살인마 전두환은 물러가라", "군은 38선으로 복귀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연좌농성을 벌였다. 싸움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시민들의 피해는 늘었지만 군경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 도청은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주석 5)
오후 3시 금남로의 시위 군중은 수만 명으로 불어났다. 유치원 꼬마 손을 잡고 나온 할머니부터 술집 여종업원, 점원, 학생, 회사원, 가정주부, 인근 음식점의 종업원 등등 모든 계층의 전 시민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경찰이 쏜 최루탄이 터지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잠시 물러났다. 몰려들기를 반복했다.
저마다 들고 나온 각목이나 쇠파이프 등으로는 어쩔 수 없는 터라 시민들은 금남로와 중앙로의 교차로 부근에서 연좌농성을 시작했다.
"차라리 우리 모두를 다 죽여라!"
누군가 외치며 준비해 온 태극기를 펼쳐 흔들었다. (주석 6)
전날까지 일방적으로 당하다시피 해 온 시민들은 공수부대의 폭압에 적극적인 저항으로 맞섰다. 하지만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계엄군에 대적하기란 불가능하고, 그래서 많은 희생이 따랐다.
주석
1> 『광주5월항쟁전집』, 32쪽.
2> 최정운, 앞의 책, 137쪽.
3> 『5ㆍ18광주민주화운동자료총서』, 23쪽.
4> 김영택, 『5월 18일 광주』, 역사공간, 2010, 황석영 외 앞의 책, 135~136쪽.)
5> 김진경 지음, 정호기 해설, 『5ㆍ18 민중항쟁』, 63쪽,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15.
6> 앞과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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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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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우리 모두를 다 죽여라!" 분노한 시민들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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