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를 당하기 직전, 아와사 타보르 공원의 푸른 하늘이 예뻐 사진을 찍었다. 사진 오른쪽, 도로에서 불과 40여 미터 떨어진 공원에서 강도를 만날 줄이야
최늘샘
오르막길에 들어서는데 한 청년이 따라오길래 길을 비켜 주었다. 또 다른 청년이 따라와서 길을 비켜주며, '현지 청년들은 걸음이 빠르네' 하고 생각했다. 앞서 걷던 청년이 바지 밑단에서 뭔가를 꺼내기에, 주머니가 터져 흘러내린 핸드폰인 줄 알았다.
그 순간, 뒤따라 온 또다른 청년 두 명이 내 백팩과 크로스백을 거칠게 잡아챘다. 눈 깜짝할 새였다. 바지 밑단에서 꺼낸 것은 흘러내린 핸드폰이 아니라 커다란 칼이었고, 네 명의 건장한 청년들은 우리를 표적으로 삼고 따라붙은 무장 강도였다.
차와 행인이 오가는 도로로부터 불과 40미터 거리, 나는 도움을 구하기 위해 "노! 노!" 라고 고함을 지르며 도로쪽으로 몸을 던졌지만 두 강도가 가방끈을 부여잡고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풀숲으로 잡아당겼다. 백팩 지퍼가 찢어지고, 물건들이 내 몸과 함께 흙바닥을 뒹굴었다. 한 명은 등 뒤에서 가방과 팔을 잡고 한 명은 눈 앞에 날선 칼을 들이밀며 "머니! 스마트폰!"이라고 속삭이며 협박했다. 그야말로 죽을 고비, 인생 최대의 공포였다.
'또 스마트폰을 뺏기면 이 아프리카 어디에서 다시 사고, 익숙하게 사용하는데 얼마나 오래 걸릴까. 폰 속에 저장된 사진과 자료들은 어쩌나. 그래도 스마트폰이랑 돈 때문에 칼에 찔려 죽을 수는 없지...'
몇 초 만에 온갖 판단과 욕설이 뇌리를 스쳤다. 뿌리치고 도망가기에는 강도들의 완력이 너무 강했다. 돈이 적게 든 지갑부터 내줘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다른 두 명의 강도를 어떻게 뿌리쳤는지 대호 형이 고함을 지르며 뛰어왔다. 얼굴에는 피가 흐르고, 손에는 강도에게 뺏은 칼이 들려 있었다. 나에게 붙은 강도들도 놀랐는지 도망을 갔다. 서둘러 떨어진 물건을 챙겨 도로로 내려왔다.
폭력의 후유증
동행 대호 형을 노린 두 강도는 나를 담당한 두 강도와 달리 협박의 말도 없이 다짜고짜 칼을 들이밀었다고 한다. 등 뒤의 강도가 고가의 노트북이 든 가방을 뺏으려는 찰나, 대호 형은 손으로 칼날을 잡고 눈 앞의 강도를 발로 밀쳐냈다.
주민의 신고를 받고 온 경찰차를 타고 경찰서에 가서 피해 사건을 설명하고 상처 치료를 부탁했다. 안내에 따라 한 시간을 기다렸는데 오가는 경찰마다 질문만 되풀이할 뿐 병원에 데려다주지 않았다.
눈꺼풀과 손이 찢어진 대호 형은 참다 못해 경찰서를 뛰쳐나가 병원을 향해 걸었다. 뒤따라온 경찰들은 병원비 지원이 불가능하며, 우리가 부자가 아니라면 병원비가 싼 공립 병원으로 가야 한다며 그제서야 우리를 실어다 주었다.
병원 응급실은 '응급실'임에도 경찰서와 마찬가지로 업무 처리가 무척 느렸다. 게다가 위급 환자가 너무 많았다. 강도의 녹슨 칼에 찔린 작은 상처 정도는 어느 누구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주사기 하나, 바늘 하나도 의사의 처방전을 받은 뒤에, 옆 건물 창구에 줄을 서서 구입한 다음에야 치료가 가능했다. 천만다행히 눈꺼풀의 상처는 심하지 않았다.
젊은 의사는 마취도 하지 않은 손에 커다란 바늘을 몇 번이나 찔러 넣더니만, 마무리 매듭을 짓지 않고 그대로 쭉 실을 빼냈다. 상처를 꿰매 본 적이 없는 건 물론이고, 찢어진 옷가지의 바느질 한 번 해본 적이 없었음이 너무나 분명하다.
낚싯바늘로 생살을 뚫는 끔찍한 고통을 준 뒤, 다시 새 바늘과 실을 사오라고 처방전을 써 주며, 이런, 그는 겸연쩍게 웃었다. 대호 형이 고통에 찬 표정으로 분노를 전하자 돌팔이 의사는 그제서야 선배 의사 셰히드씨를 불렀고, 다행히 그는 능숙하게 꿰맨 상처에 매듭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