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을 새로 내면서, 그동안 낸 여러 사전을 한꺼번에 알릴 수 있는 알림종이도 꾸며 보았다.
최종규/숲노래
<우리말 꾸러미>는 1992년부터 맞닥뜨리면서 생각한 새로운 말결을 120갈래로 나누어서 갈무리한 사전입니다.1992년부터 2019년 사이인 만큼 자그마치 스물여덟 해치 '우리말 배움 수첩'을 단출하게 간추린 셈입니다. 몇 만에 이를 우리말 이야기가 있으나 이를 고작 120가지로 추려서 엮었으니까요.
긴 나날을 살아온 만큼 <우리말 꾸러미>를 제법 두툼하게, 그러니까 120가지 이야기를 담은 참 두꺼운 사전으로도 엮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두꺼운 사전이 되면 자칫 '그때그때 알맞게 새말을 짓는 일'을 누구나 하기 어렵다고 여길 수 있겠다고 느꼈어요. 단출하게 엮는 가벼운 사전을 선보인다면, '이럴 때에 이 말을 살려서 써도 좋겠네' 하고 생각할 이웃님이 있을 테고 '나라면 이럴 때에 좀 다르게 말을 살려서 써 보고 싶네' 하고 생각할 이웃님이 있으리라 보았습니다.
물림가게 : 물려받거나 물려주는 가게. 집안에서 물려받을 수 있고 남한테서 물려받을 수 있다
물림일 : 물려받거나 물려주는 일
물림옷 : 물려받거나 물려주는 옷
오래가게 : 오래된 가게. 꽤 많은 나날이 지나도록 물려받거나 물려주면서 이어온 가게
오래집 : 오래된 집. 꽤 많은 나날이 지나도록 물려받거나 물려주면서 이어온 집
'물림'하고 '오래'란 낱말을 놓고서 새말을 차곡차곡 엮던 무렵, 서울시에서 '오래가게'란 이름으로 오래된 가게를 북돋우는 일을 했습니다. 서울시 벼슬아치하고 저하고 아무 끈이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서로 다른 자리에서 서로 비슷한 때에 서로 비슷한 말을 놓고서 새말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구나 싶어요.
자, 생각해 봐요. '오래가게'가 있다면, 이런 오래가게가 모인 곳은 '오래마을'이곤 합니다. 오래마을이라면 '오래골목'이 있을 테고, 오래골목을 걷다 보면, 이 길이 '오래길'이라고 느낄 만해요.
여기에서 생각을 뻗으면 '고전'이란 책을 '오래책'이란 말로 담아내어도 재미납니다. 그리고 '오래마을'이란 이름에는 '장수초' 같은 말도 담아낼 만해요.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이웃님이 어느 날 "예전부터 '사회'라는 이름을 잘 모르겠어요. 아이들한테 '사회'가 무엇인지 어떻게 가르쳐야 좋을까요?" 하고 여쭈셨어요. 그래서 '사회(社會)'라는 일본 한자말을 어떻게 풀어내야 하는지 헤아려 보았어요. (120쪽)
저도 어릴 적에 '사회'란 말이 참 아리송했습니다. 도무지 뭐가 뭔지 종잡기 어려웠어요. 어른이란 나이가 되고도 한참 지난 어느 날, 사전이란 책을 한참 쓰던 어느 때, 어느 이웃님이 조용히 물은 한 마디를 듣고서 '사회'라는 일본 한자말이 어떻게 태어났는가를 샅샅이 알아보았습니다.
지난날 일본 지식인은 영어 'society'를 제대로 옮겨내려고 백 해가 넘는 나날을 들였으며, 숱한 일본 지식인이 머리를 맞대어 드디어 '사회'란 한자말을 엮었다지요. 그런데 지난날에 새로운 말을 끝없이 지어내며 새로운 나라를 세우거나 가꾸려 하던 그 일본 지식인은 이제 자취를 감춥니다.
이제 웬만한 한국사람도 다 알다시피 일본은 영어를 '재패니시'로 바꾸어서 말합니다. 스스로 새말을 짓지도 않고, 오랜 일본말을 쓰지도 않아요. 영어로 툭툭 내뱉습니다. 이런 흐름을 한국에서도 고스란히 따르곤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