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필 무렵'은 코믹하고 달콤한 로맨스인가 싶다가도 이따금 '연쇄살인범 까불이'를 등장시켜 나를 긴장하게 한다.
KBS2 '동백꽃 필 무렵' 갈무리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재밌게 보고 있다. 무엇보다 싱글맘 동백(공효진 분)의 이야기를 신파조로 다루지 않아 좋다. "남편은 없는데 아들은 있을 수도 있잖아요"라고 말하는 동백의 표정은 담백해서 시원하고, 그녀를 졸졸 따라다니며 "강아지라 생각해유"라고 말하는 용식(강하늘 분)의 말투는 구수해서 유쾌하다.
하지만 보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첫 화부터 동백의 죽음이 암시되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코믹하고 달콤한 로맨스인가 싶다가도 이따금 '연쇄살인범 까불이'를 등장시켜 나를 긴장하게 한다.
여성혐오범죄를 다루는 드라마는 아니지만, 여성이 연쇄살인범의 타깃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밤에 잠이 안 온다. 회를 거듭할수록 동백을 향한 살인범의 위협이 차차 드러나며 드라마는 절정으로 다다르고 있다. 연쇄살인이라는 말만 떠올려도 자동으로 '여성 살해'라는 말이 연상되기 때문에, 남 이야기처럼 편히 볼 수가 없다. 드라마가 끝난 밤이면 문은 잘 잠겼는지 괜히 확인하게 되고, 경찰청 앱이 잘 작동하나 눌러보게 된다.
지금 사는 집에 처음 이사 왔을 때 벨이 고장 나 난감한 상황이 많았다. 택배 기사님은 벨을 누르는데도 나오지 않는다며 목소리를 높였고, 영문을 모르던 나는 당황했다. 원인을 알게 된 후 문 앞에 "벨이 고장 났습니다. 전화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반듯이 적어 붙였다.
투명 테이프로 깔끔하게 붙이고 돌아서는데 문득 '여자 사는 집이라고 광고하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글동글한 필체와 정중한 말투가 여자의 특성이라고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런 표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정성껏 붙인 메모를 당장 떼버렸다. 집으로 들어가 최대한 성의 없이 휘갈겨 쓴 필체로 적었다. '고장!!!!'
무슨 짓인가 싶으면서도 혼자 사는 여성들이 빨래 널 때 남성용 팬티를 넌다든가, 현관에 남성용 신발을 놓는 이유에 공감하게 됐다. 내가 이런 글을 쓰면 남성들이 달려와 "과대망상"이라고 댓글을 다는데 나도 이것이 과대망상이길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이런 과대망상 때문에 메모를 두 번이나 쓰고 붙이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빨리 도래하길 바란다.
화성연쇄살인사건, 나를 경악하게 한 기사 제목들
허구인 드라마만 봐도 불안이 커지는데, 여성 살해 관련 뉴스를 보면 일상이 더 흔들린다. 요즘은 어딜 가나 '화성 연쇄살인범' 이야기가 들린다. 나는 그의 살인 수법이나 범행 이력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고 싶지 않은데도 언론에서는 끝없이 떠들어댄다. 그러다 며칠 전 한 기사 제목을 보고 경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