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일병 사건’ 매형 김진모씨가 24일 경기도 하남시 자택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군 당국을 상대로 이어가고 있는 힘겨운 싸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유성호
"사건 축소·은폐에 관여한 정황이 드러난 헌병수사관과 군의관, 군 검찰관, 부대 간부들까지 수사기록에 나와 있는 서른 명 가까이를 고소·고발했는데 그중에 지금껏 단 한 명도 책임을 진 사람이 없다."
2014년 여름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놨던 이른바 '윤 일병 사건'의 유가족 김진모씨의 말이다. 김씨는 선임병들에게 지속적으로 폭행을 당하다 고통 속에 숨져간 고 윤승주 일병(사후 상병으로 추서)의 매형이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를 큰 충격 속에 빠뜨렸다. 한 병사가 목숨을 잃을 때까지 한 달 넘게 지속적으로 가해졌던 선임병들의 무자비한 구타와 엽기적 가혹행위가 밝혀졌다. 민낯을 드러낸 야만적 병영 문화에 온 국민이 경악했다.
윤 일병 사건이 처음부터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아니었다. 2014년 4월 6일, 폭행을 당하다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실려 간 윤 일병이 이튿날 숨진 직후 군 당국은 '선임병에게 맞고 쓰러진 후 음식물에 기도가 막힌 병사가 민간 병원으로 후송된 지 하루 만에 숨졌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당시 육군은 언론 브리핑에서 사망 원인을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뇌에 산소공급이 중단돼 발생한 뇌손상"으로 명시했다. '기도 폐쇄에 의한 뇌손상'이 사인이라는 육군의 설명에선 폭행의 심각성은 별로 부각되지 않았고, '음식물을 먹다가 폭행을 당해 발생한 우발적 사고'라는 뉘앙스가 강했다.
윤 일병의 사인이 '질식사'로 추정된다는 보도자료가 기자들에게 배포된 시점(2014년 4월 7일 오후 7시 51분)은 아직 사체에 대한 검시를 시작하지도 않았던 때로, 이는 사망 다음날 아침 국방장관에게 제출된 중요사건보고에도 그대로 담겼다. 부검 → 장관보고 → 언론보도의 정상적인 순서가 아니라, 거꾸로 언론보도 → 장관보고 → 부검 순으로 질식사라는 사인이 굳어진 것이다. 이는 군 검찰이 가해자들을 살인이 아닌 상해치사로 기소하는 데 주된 근거가 됐다.
'냉동식품을 먹던 병사가 선임들로부터 폭행을 당해 음식이 목에 걸려 질식사한 사건' 정도로 치부된 윤 일병 사건은 3개월 넘게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같은 해 7월 30일 KBS가 윤 일병이 목숨을 잃었던 데는 상상을 뛰어 넘는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보도하기 전까지 육군의 설명을 전한 보도 외에 단 한 건의 관련 보도가 없었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KBS 보도 직후 군인권센터가 기자회견을 열고 윤 일병에게 가해졌던 끔찍한 폭력의 실상을 낱낱이 폭로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자칫 묻힐 뻔했던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 데는 유족의 끈질긴 노력이 숨어 있었다. 김진모씨는 사건 발생 직후 병원에서 처남의 몸에 남아 있던 멍 자국을 사진으로 기록했고, 어떤 언론도 주목하지 않던 상황에서 모든 공판에 참석하면서 증거를 수집해왔다.
분노한 여론 앞에 8월 4일 한민구 국방장관이 대국민사과를 발표했고, 5일에는 권오성 육군참모총장이 사건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육군은 재판관할을 28사단 보통군사법원에서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으로 이관했고, 군 검찰은 가해자들에게 최초 적용했던 상해치사 혐의를 살인으로 변경했다.
2016년 6월 3일, 국방부 고등군사법원 파기환송심 결심 공판에서 주범 이아무개 병장은 살인죄를 적용해 징역 40년, 하아무개 병장과 이아무개 상병, 지아무개 상병은 상해치사죄로 징역 7년, 유아무개 하사는 징역 5년형이 확정됐다.
폭행의 직접 가해자들에게 단죄가 이뤄진 후, 윤 일병의 유족은 사건 축소·은폐 의혹을 사고 있는 헌병수사관과 군 검찰관, 부검의 등을 직무유기, 허위진단서 작성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군 검찰은 이들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유족은 포기하지 않았다. 2017년 4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낸 것이다.
재판이 시작된 지 2년이 훌쩍 지났지만, 소송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그동안 재판부가 두 번 바뀐 데다, 잘해야 서너 달에 한 번 공판이 열리는 탓에 언제쯤 결과가 나올지 기약하기 어렵다.
그래도 의미 있는 성과는 있었다. 윤 일병의 사인에 대해 지금껏 알려진 '좌멸증후군 및 속발성 쇼크'에서 '횡문근융해증'이라는 감정결과를 도출해낸 것도 그중 하나다. 최근에는 당초 군 당국이 윤 일병의 사인으로 내세운 '기도폐쇄에 의한 질식사'를 민간병원 의사에게서 들었다고 주장했던 헌병수사관을 법정에 증인으로 세우게 됐다.
지난 24일 <오마이뉴스>는 고 윤승주 일병의 매형 김진모씨를 만나 지난 5년 동안 유족들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군 당국을 상대로 이어가고 있는 힘겨운 싸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는 경기도 하남시 김씨 자택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 ‘윤 일병 사건’ 매형 김진모씨 "의사, 군법무관, 군간부 다 한통속이 되어 조작했다" ‘윤 일병 사건’ 매형 김진모씨가 24일 경기도 하남시 자택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군 당국을 상대로 이어가고 있는 힘겨운 싸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 유성호
- 5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당초 국가보훈처는 윤 일병의 사망이 국가 수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면서 윤 일병의 국가유공자 지정을 거부해왔다.
"국가보훈처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진행했다. 2년 반 동안 1심이 진행 중이었는데 재판부가 화해조정 권고를 했다. 유족과 보훈처가 이를 받아들여 지난 2018년 1월 3일 마침내 국가유공자 증서를 받았다. 우리로선 첫 번째 성과였다."
- 사건 직후부터 유족은 윤 일병이 '기도폐쇄에 의한 질식'이 아니라 폭행으로 인한 사망 가능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윤 일병이 사망한 지 5분도 지나지 않았을 때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해서 내가 사진을 찍어놨다. 이 사진을 보고도 질식사로 죽었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군 당국은 처음부터 이 사건이 살인죄가 돼선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 분명하다. '구타는 있었지만 질식사로 죽었다'고 사인을 둔갑시켰다. 헌병은 조작에 불리한 증거들은 일부러 배제시켰고, 질식사에 유리한 증거들은 부각시켰다.
다행스럽게도 질식사했다는 증거는 음식물을 먹다가 폭행을 당해 사망했다는 한 가지 사실밖에 없었지만, 구타가 직접적 원인이 돼 죽음에 이르렀다는 증거는 차고도 넘쳤다. 현장검증 동영상을 보면 냉동식품을 먹던 중 가해자들이 윤 일병을 폭행했다는 걸 보여줄 뿐, 음식물을 먹다가 목을 맞아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죽었다는 내용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나오지 않는다.
또 윤 일병이 폭행을 당하다가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 가던 광경을 우연히 본 제보자가 가해자 중 한 사람으로부터 폭행사실을 전해 듣고는 이날 밤 본부포대장에게 공중전화로 보고했다. 제보자는 윤 일병이 음식물을 먹다가 질식한 것이 아니라 폭행 때문에 쓰러졌다고 분명히 말했고, 본부포대장은 이런 내용이 담긴 통화 녹음과 메모를 다음날 아침 대대장에게 보고했다. 이후 대대장은 부대를 방문했던 헌병대장에게 이런 내용을 전달했다. 윤 일병이 숨지기 전 이미 헌병대에서는 질식이 아니라 폭행이 원인이라는 걸 정확히 알고 있었다."
- 4월 6일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실려 갔던 윤 일병은 다음날인 7일 오후 4시 20분께 사망했다. 윤 일병이 사망하던 날 저녁 육군이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발생한 뇌손상으로 추정"이란 표현이 등장한다. 또 이는 국방장관에게 보고된 중요사건보고(8일 오전)에도 그대로 담겼다. 정작 부검은 이후(8일 오후 3시)에서야 이뤄졌다. 부검이 이뤄지기도 전에 서둘러 '질식사'로 결론 내리려 했다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군이 사인을 질식사로 꿰어 맞추려 했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건 국군양주병원 의무기록지와 부검감정서다. 가해자들로부터 구타를 당하다 심정지가 온 윤 일병은 연천의료원-국군양주병원-의정부 성모병원 순으로 후송됐다.
국군양주병원 군의관은 연천의료원과의 전화통화로 '응급처치시 윤 일병의 입과 인두에서 구토 및 음식물이 많이 나왔다'는 사실을 들었다고 의무기록지에 기재했다. 하지만 내가 직접 연천의료원 의료진을 만나 확인한 결과, 응급처치를 할 때 나온 음식물은 밥풀 크기 정도의 조그만 조각 하나뿐이었다고 했다. 또 국군양주병원의 전화를 받거나 그런 사실을 이야기 한 적도 없다고 했다.
국군양주병원의 거짓말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의정부 성모병원으로 윤 일병을 후송하면서 또 다른 군의관을 앰뷸런스에 동승시켜 성모병원 응급실 의사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전했던 거다. 이 두 가지 거짓말이 국방부 조사본부 부검의가 작성한 부검감정서의 사인 판단 근거로 제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