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사 어귀 일주문
박도
성불하십시오
거기서 저녁공양을 거지반 마칠 무렵이었다. 그때 조금 전에 같이 택시를 타고 온 두 여인이 공양 간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내 자리로 다가 와서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나도 두 손을 모아 답례를 하고 마침 식사를 마쳤기에 곧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찰나 한 여인이 잽싸게 밥상 위의 공양 그릇과 수저를 들고는 그릇 닦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는 그 그릇을 깨끗이 닦은 뒤 제자리에 놓고서는 나를 향해 또 합장 배례했다.
"처사님! 성불하십시오."
나는 그날 밤 늦도록 선방에서 오랫동안 정성껏 쓴 작품을 기분 좋게 퇴고했다. 이튿날 아침 공양 때도 전날 저녁과 똑같이 두 여인에게 아침 인사를 받았다. 내 공양이 끝나자 또 다른 여인은 내 공양 그릇을 잽싸게 낚아채 갔다.
그날 오후 느지막이 월정사를 떠나왔다. 이번 산사 가는 길은 다른 어느 때보다 기분이 좋았고, 산사에서 묵는 동안 글 마무리도 잘 됐다.
나는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한 진리를 깨우쳤다. 남에게 대접을 받거나 남을 감동시키는 일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조금 더 남에게 베풀거나 내 몫을 남보다 조금 더 적게 가지는 데 있다는 것을 새삼 체득했다.
진리는 멀고 고상한데 있지 않았다.
내가 남보다 조금 더 적게 갖고, 내 몫이 적으면 세상사람들은 서로 죽기살기로 싸우지 않을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세상에 내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장 소중한 내 몸뚱이마저도 끝내 한 줌 흙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내가 일상 생활에서 남에게 조금 더 베풀고, 남보다 조금 더 적게 가지면 세상은 한결 조용하고 밝아질 것이다. 그러면 세상의 평화는 저절로 깃들며 너와 나는 화목하게 될 것이다.
이즈음 세상이 날로 시끄러워지는 것은 내가 남보다 더 많이 가지려 하고, 내 몫을 크게 하려는 데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개도 물고가지 않는 돈 때문에 오늘도 저자거리는 소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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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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