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서문과 수어장대 사이에 있는 성곽길 모습
한정환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던 한겨울, 남한산성은 절대적인 군사력을 앞세운 청군에 의해 완전히 포위된다. 인조는 여기서 47일 동안 청군에 맞서 결사 항전을 계속하지만 결국 청 태종 앞에 무릎을 꿇고 삼전도에서 치욕적인 항복을 하게 된다. 그때가 1637년 1월 30일이다. 그 결과 왕자들과 많은 신하들이 청에 인질로 붙잡혀 가서 고초를 겪었다.
남한산성 제1코스 탐방
훌륭한 문화유산과 아픈 역사를 함께 가슴에 새기고 남한산성 제1코스 탐방에 나섰다. 탐방코스는 산성로터리를 출발해 북문과 서문을 거쳐 수어장대에서 잠시 휴식을 하고, 남문으로 내려오는 3.8km 코스이다. 가족단위 여행객들이 접근하기 제일 쉬운 코스이다. 산책 삼아 다니면 약 1시간 반이 소요된다.
남한산성에는 모두 4개의 문이 있다. 닭백숙 음식점으로 유명한 산성로터리를 출발하여 조금만 올라가면 바로 북문이 보인다. 북문은 병자호란 당시 영의정 김류의 주장에 의해 군사 300여 명이 북문을 열고 나가 청나라군과 맞서 싸웠으나, 적의 계략에 빠져 전멸한 곳이다.
북문을 전승문(全勝門)이라고도 한다. 정조 3년(1779) 성곽을 보수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승문은 전쟁에서 패하지 않고 승리한다는 뜻인데 왜 참패한 곳에 전승문이라 부르는지 궁금했다. 이는 그때의 패전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새긴 것으로 생각된다.
북문을 빠져나가 보면 바로 앞에 등산로가 보이고 성곽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높게 쌓은 성벽을 바라보니 그때 당시에 현대화된 장비도 없이 순수한 사람 인력으로 어떻게 저리 높게 쌓았는지 궁금했다. 통일신라시대에 쌓았던 주장성을 기초로 하여 조금씩 증축돼 오늘에 이르렀지만, 그때 당시 동원되어 고생한 백성들을 생각하니 저절로 고개가 숙연해진다.
남한산성에는 요즘도 복원과 정비를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그래서 주변에 공사 자재 등이 놓여있어 조금은 지저분해 보인다. 그러나 완벽한 모습의 남한산성을 재현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하니 불편한 점은 있었지만 탐방이 더 즐겁고 발걸음 또한 더 가벼워졌다.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일정한 간격으로 담장에 구멍이 뚫려 있다. 이 구멍을 총안(銃眼)이라고 하는데, 이는 적을 향해 총을 쏠 때 사용한다. 그리고 여장(女墻) 사이사이에 있는 긴 홈은 몸을 숨기며 화살을 쏠 때 사용했다고 한다. 여장(女墻)은 성벽 위에 설치하는 낮은 담장으로 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적을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구조물을 말한다.
북문을 지나 서문으로 가다 보면 울창한 산림을 볼 수 있다. 이는 마을 주민들이 남한산성의 귀중한 산림을 지켜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 '금림조합'을 만들어 도벌을 막은 덕분이라고 한다. 산책로 중간중간 이곳에서 나온 폐목을 활용해 통나무 의자도 만들어 놓았다. 거기에다 설치 년, 월, 일을 아라비아 숫자로 새겨 놓아 관광객들의 눈길을 끈다.
주변 경관을 보다 보면 금방 서문에 도착한다. 북문에서 걸어가다 보니 조금 가깝다는 느낌도 들었다. 서문을 우익문(右翼門)이라고도 부르는데, 병자호란 당시 인조는 이곳에서 47일 동안 청나라 군과 싸우며 버티다가 청나라 황제 칸에게 항복을 했다. 인조는 세자와 함께 이곳을 빠져나가 삼전도에서 치욕적인 항복을 하며,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이마로 땅을 찧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모욕을 당한다.
요즘은 서문에 올라와서 보면 현대화된 서울의 모습과 잠실롯데타워가 보이고, 한창 개발 중인 위례신도시의 모습도 볼 수 있다. 특히 야간에는 사진동호회 회원들이 서울 야경을 촬영하기 위해 많이 모이는 장소로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