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숙 발탈보유자(국가무형문화재 79호)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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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무형문화재 제79호 발탈에 대해 소개한다면?
"발탈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발에다가 탈을 씌워서 하는 놀이입니다. 인형극이라고 딱히 할 수도 없고. 또 단막극이라고 할 수도 없고. 내용 자체가 다양하기 때문에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렵지만, 마당극에 가깝다고 보면 됩니다."
- 어떤 내용으로 구성돼 있나요?
"출연자는 탈꾼, 재담꾼, 조기 장사 아낙네 세 사람이 나와요. 판소리를 위주로 해서 남도민요, 경기민요가 있고 비나리, 살풀이, 액막이도 있어요. 재담과 노래, 춤이 있는 국악 코미디 같습니다."
- 발탈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고(故) 이동안 선생님께서 살아계실 때 TV에 출연한 일이 있었습니다. 사회자가 한 말씀 하라고 했는데 그때 선생님이 '내가 좋아하는 형님 조몽실 선생님이 있는데 그 딸이 조영숙이다. 조영숙은 이것을 보면 나를 꼭 찾아오너라'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아마 그때 발언한 테이프 찾아보면 KBS 어딘가에 있을 거예요. 그것이 인연이 돼서 시작했어요. 그런데 발탈을 배워 보니까 대본이 괜찮더라고요. 연극 대본도 훌륭하고 여러 장르가 다 들어가 있어서 '이거 괜찮겠다' 생각해서 하게 됐어요."
- 고(故) 이동안 선생님은 보유자의 어떤 점을 보고 같이하자고 했나요?
"내가 여성국극을 하면서 다져진 노하우가 있고 재담도 잘하고 코믹한 것도 많이 했거든요. 그런 점을 높게 평가해 주신 것 같습니다."
- 발탈의 매력은?
"한 작품에 여러 장르가 다 들어 있잖아요. 이런 것이 없어요. 다른 종목을 보면 판소리면 판소리, 무용이면 무용, 살풀이면 살풀이, 북춤이면 북춤 하나잖아요. 그런데 발탈은 여러 가지가 다 들어있어요. 그래서 참 재밌어요."
- 여든이 넘는 나이인데 힘들지는 않은가요?
"그게 희한해요. 공연이 끝나면 힘이 쫙 빠지죠. 그런데 그전까지 화장도 신나게 하고 머리도 하고 의상 입고 신이 나요. 평소에는 걸을 때 불편한 점이 있는데 무대에 올라가면 나도 모르게 춤을 추더라고요. 그 끼를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웃음)"
- 현재 줄타기, 가사와 함께 긴급보호무형문화재입니다. 전수에 어려움이 있다면?
"내가 연기하는 데 어려움은 없어요. 그런데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 없어요. 발탈은 세 명이 해야 완판이 되는데 개인 종목이라 배울 것이 많아요. 다른 종목은 혼자 하는 것이 많잖아요. 무용도 판소리도 경기민요도 심지어 줄타기도 혼자 할 수 있잖아요. 발탈은 여러 장르를 해야 하니까 배우기가 힘들어요."
- 발탈을 하면서 힘들었던 순간이 있다면?
"전수조교 시절 성북구청 옆 지하에서 학원을 했어요. 여름에는 습기가 차서 200벌 가까이 되는 의상에 곰팡이가 생기고 했는데 돈이 없어 다른 곳으로 갈 수가 없었어요. 당시 국가에서 전수조교에게 지급되는 금액이 60만 원이었어요. 그 돈으로 집세, 학원비 30만 원 주고 나면 30만 원 갖고 살았어요. 여기에 전기요금, 수도세 등 내고 나면 항상 적자였죠. 거기서 7년 동안 있었어요. 돈이 부족하면 행사 같은 데 가서 메꿨어요. 배우러 오는 애들 밥이라도 사서 먹여 줘야죠. 오는 게 고마우니까. 발탈은 학생이고 누가 배우러 잘 안 와요."
- 전수관은 아니더라도 제대로 된 연습장을 구할 생각은 안 했나요?
"성북구에다가 얘기했어요. 그런데 구청장이 바뀌면 모르쇠가 돼버려요. 나는 성북구청 공사가 한창일 때 왔거든요. 상당히 오래됐어요. 그때부터 문화과에 얘기해서 하다못해 '창고 같은 곳이라도 좋다' '우리는 무용처럼 넓은 공간도 필요 없다. 몇 명이 앉을 수 있고 한쪽에 짐이라도 갖다 놓을 수 있는 여섯 평만 되면 좋겠다'고 했는데 잘 안됐어요. 그렇게 해주면 구청 행사 때 우리가 무료로 공연해주면 서로 좋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구청장 바뀔 때마다 갔었어요. 지금이 세 번인가 네 번 바뀌었는데 이번에는 안 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