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8월 평양의 이인모씨 집을 방문해 이씨의 가족들과 현관에서 찍은 사진. 정중앙에 서 있는 사람이 조영삼씨다.
조영삼
인민군 종군기자 출신의 장기수 이인모 노인을 만나 그를 북한에 송환되기까지 돌보고, 그 인연으로 북한에도 다녀온 것은 이러한 한반도의 운명을 어떻게든 작은 힘으로 개척해 보려고 했던 것이다. 부인 엄계희씨도 장례식 때, 그의 삶이 "너무 이상주의라고 생각했는데 절대 이상이 아니고, 우리 국민의 꿈이 아니었나 싶다"고 말했다. 그것은 바로 촛불의 정신이었다. 무혈혁명의 촛불이 내건 적폐 중에는 남북의 평화를 방해하는 사드배치도 엄연히 들어있음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관련기사: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살았던 '나그네' 조영삼).
그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우리끼리처럼 말로만 민족, 민족 하지 말고, 민족 앞에 모든 걸 내려놓으십시오"라고 당당하게 요구했다. 그 외침 덕분인지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세계에 자랑스럽게 보여주지 않았던가. 70여 년간의 굳은 분단의 장벽이 몇 번 만남으로 하루아침에 무너지랴만, 이렇게라도 만난 것은 강한 바람 앞에 비록 풀잎처럼 눞더라도 결코 뽑히지 않는 민중들이 끊임없이 외치며 강인하게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을 소리쳐 부른다. 그리고 "저는 대통령님을 인간적으로 존경했고 사랑했습니다. 이 세상 소풍 끝내고 나서도 그러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의 산화가 사드철회를 위한 미국과의 협상에서 한 방울이나마 좋은 결과의 마중물이 된다면 연연세세 가문의 큰 영광으로 알겠습니다"라며 사드철폐를 꼭 해내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가 목숨을 이 세상속으로 내던진 결정적 이유는 여기에 있다. 허공이 되어, 대지가 되어, 두 눈 부릅뜨고, 이 땅에 남아 있는 가족과 이웃과 전 민중이 진정 평화롭게 살아가길 희망해서다. 그는 죽어서도 살고 있는 것이다. 이들 곁에서.
아, 유언의 마지막 덧붙이는 글은 차마 눈물이 어려 읽지 못하겠다.
"저의 행동에 설왕설래 말이 많을 줄로 사료됩니다. 개의치 않습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의 자유인'으로 살고자 했으나, 그러지 못한 인생이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아직 이 세상 소풍 끝나지 않는 분들, 외람되지만 처와 어린 아들내미 부탁합니다."
그는 향기 가득한 국화꽃처럼 만개되어 스러져갔다. 결코 피기 전에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단지 앞으로 멀어져 갔을 뿐이다. 그는 여전히 우리 앞을 걸어가고 있다.
<숫타니파타(경집)>에서 석가는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서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법문을 한다. 열사는 이 땅과 이 세계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그렇게 걸어갔다. 그는 고독한 수행자였다. 민중의 아픔을 자기화한 평화의 수행자, 정의의 십자가를 매고 한반도의 골고다 언덕을 홀로 걸어간 고독한 수도사다.
그를 우리 마음에서 내려놓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가 원했던 것처럼, 죽음의 사드를 그 주인에게 되돌려주지 않는 한 그를 놓아줄 수가 없다. 그는 지금 사드가 들어간 소성리의 달마산 언덕에 우뚝서서 바라보고 있을 게다. 가끔은 산록에서 내려오는 바람이 우리 평화지킴이들의 볼을 시원하게 부벼줄 때, 그가 이 땅에서 숨쉬고 있음을 느낀다.
열사의 2주기, 그를 추모하며, 한반도에 무용한 사드를 철폐하고, 이 땅에 평화를 불러오는 추모제가 18일 낮 2시에 성주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 열린다. 많은 분들의 참석을 바란다. 마지막으로 고희림 평화의 시인이 열사를 위해 읊은 시의 마지막 구절을 그의 제단에 다시 바친다.
최고의 창과 방패는
전쟁을 위한 전쟁이 아니라
평화의 방패를 들고
통일의 창으로 물리치는 겁니다
이를 알았기에
님은
어린 아들과 아내를 남겨두고
평화의 제단 민족의 제단에
자신의 목숨을 올렸습니다
버릴 수 없는 조상의 마을을 지키려
소성리의 원통을 함께 느끼며
영혼으로 사드를 막겠다는 결단에 대통령은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으십시오
오늘 우리는 님이 데리고 간 사드를 영원히 묻습니다
님은 끝끝내 사드를 데리고 가셨으니까요
죽음으로 영혼으로 사드를 막아내고야 말았으니까요
부끄럽고 슬프고 분한 날입니다
지금 이 순간 님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
간절할 뿐입니다
(평화의 바다로 먼저 가신 고 조영삼 열사께 / 고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