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8일 박재동 화백과 명진스님이 국회 정론관에서 국정원 개혁위의 활동시한 연장을 촉구하는 내놔라 내파일 시민행동 기자회견에 참석한 후 회견장을 나서며 손을 꼭 잡고 있다.
남소연
5일 서울행정법원은 국가정보원(국정원)을 상대로 한 명진 스님의 '내놔라 내파일'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와 일부패소를 선고하고 김인국 신부의 소송에 대해서는 원고 패소를 선고했다. 지난 8월 16일 박재동 화백과 필자의 '내놔라 내 파일' 소송에서 국정원의 완패를 선고했던 행정법원이 이번에는 국정원에 절반승과 완승을 안긴 셈이다.
이로써 '내놔라 내파일 시민행동'(시민행동)이 국정원을 상대로 시범 삼아 진행한 정보공개청구소송 4건의 1심이 모두 끝났다. 4인의 원고들은 2 완승, 1 부분승, 1 완패를 기록했다. 얼핏 보기에는 시민행동이 부분적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법리적으로 완승을 거뒀다. 시민행동이 내심 바랐던 것은 내놔라 내파일 소송과 관련해서 법원이 다음과 같은 일련의 법리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첫째, 법원은 국정원의 사찰정보 비공개처분의 옳고 그름을 심사하기 위해 국정원이 원고에 대해 보유 중인 모든 정보를 숨김없이, 남김없이 제출할 것을 명할 수 있다. 둘째, 법원은 제출받은 원고 관련 정보가 과연 국정원이 적법하게 수집할 수 있는 국가안보 목적의 '국내보안정보'에 해당하는지를 심사할 수 있다.
셋째, 법원은 심사 결과 국가안보 목적의 국내보안정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원고 관련 정보에 대해 국정원에 본인 공개를 명할 수 있다. 넷째, 법원은 이때 정보공개법상의 비공개 사유 해당 여부를 일일이 검토해서 해당되지 않는 정보에 대해서만 최대한 본인 공개를 명해야 한다.
법리적으로만 판단하면 시민행동은 이번 시범소송에서 전승을 거뒀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4인의 '내놔라 내파일' 소송에서 행정법원의 2개 합의재판부가 위의 법리를 전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아직 1심 판결이긴 하지만 두 개의 재판부가 동일한 법리를 개발해서 적용했다는 점에서 위의 정보공개 판단 법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2심에서도 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서 국정원의 권한과 업무도 다른 행정기관과 마찬가지로 사법심사와 사법통제의 대상이 된다는 법치주의의 일반원칙을 두 차례나 확인했다.
획기적인 판결이지만 첫술이라 한계도
이번 판결에도 부족한 부분이 없진 않다. 아무리 훌륭해도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 건 당연하다. 이번에는 고작 4인이 시범소송을 냈다. 결과적으로 이번 판결은 4인과 유사한 이유와 상황에서 사찰을 받은 사람들한테만 적용될 수 있다.
이번 판결에 힘입어 이제부터 더 많은 사람과 단체가 내놔라 내파일 소송을 제기할 경우 행정법원은 국정원이 매우 다양한 이유와 배경 아래 수집한 개인정보에 대해 그 정당성 여부 및 본인 공개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내놔라 내파일 청구와 소송이 많아질수록 정보수집의 합법성 판단기준 및 정보파일의 본인 공개 기준이 더욱 정교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판결의 첫 번째 한계가 소송주체가 소수에 그친 데서 나왔다면 두 번째 한계는 소송진행, 세 번째 한계는 판결내용에서 비롯됐다. 시민행동은 소송 진행의 속도와 편의를 위해 국정원의 공개대상 정보 특정 요구에 응했다. 그렇기 때문에 국정원은 소송주체 4인에 대해 갖고 있는 모든 정보를 재판부에 제출하지 않고 원고 측이 특정해준 기간과 사건에 관련된 정보만을 선별해서 제출했다. 그 결과 재판부의 판단대상이 좁아져 판결내용이 빈약해진 게 아쉽다.
예를 들어 곽노현과 박재동은 국가보안법(국보법) 폐지나 국정원 발본 개혁을 주장해서 국정원의 사찰을 받은 사실이 재판과정에서 국정원의 진술을 통해 드러났지만 이와 관련된 사찰정보가 재판부에 제출되지는 않았다. 곽노현과 박재동뿐 아니라 4인 모두가 공개적으로 개진했던 국보법 폐지 주장이 과연 정당한 사찰 사유가 되는지 법적 판단을 받을 기회를 놓친 셈이다.
세 번째 한계는 4인에 대한 판결내용이 획기적이긴 하지만 정교하고 치밀하지는 않다는 데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법리적으로 애매한지는 뒤에서 살펴볼 것이다. 물론 4개의 판결이 모두 이 분야에서 첫 판결이나 다름없어서 지금의 한계는 이해되는 측면이 강하다. 향후 다양한 판례가 쌓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관련 법령이 제정되면서 한층 정교한 판단기준이 구축될 게 틀림없다.
법원, 원고 관련 정보를 전부 제출받아 심사하진 못해
위의 한계 중에서 두 번째, 소송 진행의 편의에서 비롯된 한계에 대해서는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하다. 정보공개청구소송이 의미를 가지려면 국정원이 재판부에 모든 원고 관련 정보를 정직하게 제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효성 있는 사법심사와 사법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는 너무나 당연한 전제조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번 4인 관련 재판에서 국정원은 곽노현 사찰문건 30건, 박재동 사찰문건 5건, 명진 스님 사찰문건 30건, 김인국 신부 사찰문건 5건을 비공개열람용으로 법원에 제출했을 뿐이다. 이는 국정원의 공개대상 정보 특정 요구를 원고 측이 신속한 재판 진행을 위해 받아들인 결과이지만 그 결과 이번 재판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피할 수 없었다.
첫째, 첫 번째 행정소송에서 국정원은 지난 정부까지 국내사찰을 담당해온 부서가 작성해서 지금은 사용이 봉인된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서 나온 정보만을 법원에 제출했을 가능성이 높다.
원고들의 국보법 폐지주장이나 보안사범 석방촉구 활동에 대한 사찰정보가 재판부에 제출되지 않은 사실로 미루어볼 때, 봉인된 정보문건 데이터베이스에는 대공부서에서 수집한 정보가 포함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정보공개청구소송에서 행정법원은 국정원에 정보수집부서를 막론하고 원고에 대한 국정원 파일을 모두 제출하라고 명해야 한다.
둘째, 국정원이 제출한 정보문건은 수집 시기가 한정돼 있었다. 이를테면 곽노현은 서울교육감 재직기간, 김인국 신부는 사제단 대표 신부 시절로 제한됐다. 국정원의 공개 대상 정보 특정 요구는 잘못된 것이다. 재판을 받는 이상 국정원은 원고 관련 개인정보 전부를 법원에 제출할 의무가 있다.
이번에는 원고 측이 국정원의 요구를 수용해서 기간을 특정해줬지만 앞으로는 그럴 이유가 없다. 정보공개청구소송을 맡은 행정법원은 국정원에 정보수집 시기를 불문하고 원고에 대해 수집된 모든 정보를 제출하라고 해야 맞다.
셋째, 국정원은 이번에 원고의 이름이 문건 제목에 들어간 정보문건만을 골라서 제출했다. 이것도 국정원의 특정 요구에 따라 원고 측이 제안한 것이나 앞으로는 이럴 이유가 없다.
오히려 다른 사람이나 단체, 기관과 관련해서도 얼마든지 원고관련 개인정보가 수집됐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부분도 원칙적으로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삼아서 그 적법성 여부를 법원이 심사할 수 있어야 한다. 요컨대, 문건 제목에 원고 이름이 들어간 정보 파일에 담긴 사찰정보만을 공개대상으로 삼을 이유가 없다. 시민행동은 향후 국정원의 공개대상정보 특정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것이다.
공직자 사찰, 직권남용 정치사찰로서 국가안보 목적성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