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9월 17일 방북한 고이즈미 당시 일본 총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AP
아베 신조를 우뚝 세워준 북일평양선언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총리가 식민지배 문제 및 현안들을 해결하고 경제협력을 해나가며 관계정상화를 추진하기로 약속하는 선언이었다.
일본 입장에서 보면, 이 선언은 납치 문제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갖는다. 일본이 주장하는 '북한에 의한 납치 피해자'에 대해 북한은 '자발적인 입북자'라고 주장했었다. 평양선언은 이 논쟁에 어느 정도의 전기를 제공했다. 북한이 종래 주장을 간접적으로나마 철회했기 때문이다. 평양선언 제3조에 그 점이 언급됐다.
"일본 국민의 생명 및 안전과 관련된 현안 문제에 대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측은 조·일 두 나라의 비정상적 관계 속에서 발생한 이러한 유감스러운 문제가 앞으로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확인했다."
일본인 납치 문제를 '일본 국민의 생명 및 안전과 관련된 현안 문제'로 지칭했다. 그런 다음 '이러한 유감스러운 문제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할 책임'을 북한에 부여했다. 김정일 위원장이 '자발적인 입북자'가 아니라 '북한에 의한 납치 피해자'라고 인정한 셈이 된 것이다. 그가 입장을 급선회한 배경을 시급한 경제협력의 필요성에서 찾는 시각이 그 당시 유력했다.
북한은 납치 문제를 인정해주면 국교 체결과 경협이 순조로울 것이라 예측했었다. 이 예측은 처음에는 적중했다. 평양선언 직후의 일본 여론도 국교 체결을 지지하는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의 논문 '2002년 북일정상회담과 아베 신조의 부상'에 당시 일본 분위기가 소개돼 있다. 평양선언 직후인 2002년 10월에 실시된 여론조사에 관한 대목이다.
"무엇보다도 북일 국교정상화에 대해서는 일본 국민의 지지가 있었다. 일본 내각부가 실시한 '외교에 관한 여론조사(2002년 10월 10일~20일 실시)'에 따르면 국교정상화에 대해 일본 국민의 66.1%가 찬성이었으며, 반대는 26%였다." - 역사비평사가 2015년 발행한 <역사비평> 제112호.
압도적 비율의 일본 국민들이 평양선언과 북일 수교를 지지했던 것. 이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졌다면, 양국은 정상적인 외교관계를 맺는 사이가 됐을 것이다. 동시에 아베 신조는 총리가 되지 못했거나 아니면 지금처럼 확고한 기반을 구축하지 못했을 공산이 크다. 왜냐하면 북일 수교로 가는 듯했던 분위기가 갑자기 뒤집히면서 아베 신조가 새로운 지도자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반전
분위기가 반전된 것은 다름 아닌 납치 문제 때문이었다. 납치 문제를 인정해주면 일본의 태도가 누그러질 것이라는 북한의 예측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오판으로 판명됐다. 북한이 납치 문제를 시인했다는 것을 명분으로 일본 우익이 북한에 대한 총공세에 나섰기 때문이다.
일본 우익은 도쿄 시내에서 선전용 차량을 끌고 다니거나 시위를 벌이는 방법으로 납치 문제를 크게 부각시켰다. 또 친북성향인 조총련 한국인들을 괴롭히는 방법으로 북한 정부를 자극하고 양국 관계를 악화시켰다.
그러는 사이, 수교 문제는 뒷전으로 밀리고 납치 문제만 전면에 부각됐다. 이런 공세의 선두에 선 인물이 바로 아베 신조다. 그는 이 분위기를 활용해 우익 세력을 결집하는 데 성공했다. 위의 남기정 논문은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하여 9.17은 일본의 보수우익 세력에게 전후사(戰後史)의 '결정적 순간'이 되었다. 보수적 시민운동 그룹이 자생적으로 늘어났으며, 이들이 주관하는 모임과 시위에 자발적으로 참가하는 일본인이 극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날 이후 일본의 시민사회에서 '보수의 조류'가 조직화되고 팽배해지기 시작했다."
패전 이후의 일본 역사에서 '결정적 순간'이 됐을 뿐 아니라 아베 자신한테도 '출세작'이 된 9.17 평양선언은 일차적으로는 정부 수반인 고이즈미 총리가 만들어낸 결과물이지만, 아베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봐도 될 만한 이유가 있었다. 납치 사실을 인정할 마음이 없었던 김정일이 갑자기 생각을 바꾸게 된 데에 아베 관방차관의 역할이 컸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평양에서 큰소리로 말한 결과